|
익산시 마동에 자리한 대한예수교 장로회 은실교회.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산 정상에 아담하게 세워진 교회가 정겹다. 빛바랜 새하얀 건물 외벽이 교회의 역사를 대변해주고도 남는다. 44년간의 교회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며 함께한 이가 있다. 바로 안승렬 담임 목사(77).
안 목사는 은실교회의 산증인이다. 1969년 10월 19일 교회를 설립했다. 그의 나이 33살 때 일이다. 말이 교회지 ‘학고방(판잣집)’이나 다름없었다. 10평도 안 되는 ‘닭장’ 같은 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신도도 몇 명 되지 않고, 목사 안수를 받기 전인 전도사의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 기운이 충만했다.
교회다운 면모(?)를 갖춘 것은 1972년. 지금의 자리에 새롭게 교회를 지어 이전했다. 대지 100평에 건평 24평 규모인 아주 아담한 교회를 세웠다. 오태근 장로를 비롯해 한정이·변후연·유정자·이안선 권사가 초창기부터 지금껏 같이하고 있는 신도들이다.
안 목사가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1979년 12월 27일. 교회를 개척 한 후 꼬박 10년 만이다. 43살 늦깎이 목사가 된 안 목사는 더욱 더 하나님 일에 몰두했다. 당시 “(안 목사가)기도 만해도 병이 낫는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신도들이 몰려들었다.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 받은 환자들이 교회를 찾은 것.
안 목사는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라고 말했다.
이처럼 말씀을 믿으면 말씀이 믿음을 통해서 인간의 법칙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적인 현실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현재 안 목사와 함께하는 은실교회 신도는 300여명. 오태근 공로 장로와 김해출·최병모·이국용·윤석정·정동진·박종안 시무 장로 등 7명이 장로로 있다. 김연실 교육전도사와 최영숙 심방전도사가 안 목사를 돕고 있다.
안 목사는 “44년간 숱한 역경과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로 여기까지 왔다”면서 “항상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건실한 교회로 영원히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살 때 몸 크게 다쳐 결혼시기 놓쳐
안 목사는 19살 때 그네를 타다 척추를 크게 다쳤다. 결리고 쑤시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지만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해 병원 치료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먹고 살기 바빠 아픈 몸을 이끌고 공장에 다녀야만 했다. 대구에서 무려 8년간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일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하는 통증을 낫기 위해 절에 가보고 굿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너무 심하게 아파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안 목사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화장품 보따리 장사를 하며 생계유지를 하던 안 목사는 그때 처음 하나님을 만났다. 1964년 28살 되던 해에 기독교에 입문한 것.
캐나다 선교사들의 손에 이끌려 처음 접해본 하나님 말씀은 경이로웠다. 교회에 나가면 지치고 병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포근했다.
그러길 1년. 어느 날 안 목사는 장이 파열돼 사경을 헤맸다. 마침 근처에 사는 전북대학교 이강문 교수가 발견하고 예수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 당시 마동의 캐나다 선교센터의 구미애 선교사가 예수병원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3개월 동안 3번의 큰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10년간 방치해 고통 속에 살았던 척추수술도 함께 받았다. 처음에는 인공 항문을 만들어 복부로 배설하는 수술에 이어 2번의 외과 수술도 성공적이어서 파열됐던 대장은 정상적인 위치를 찾았고 이전과 같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투병생활 중 절망에 빠진 안 목사는 이번에 살려주시면 앞으로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무조건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고 기도했다. 3개월 후 병은 기적처럼 말끔히 나았다. 예수병원은 안 목사의 딱한 소식을 알고 수술비와 입원비도 받지 않았다.
#42년 전 마음 빚 마침내 갚다
안 목사는 2007년 11월 15일 1965년에 발행된 예수병원 진찰권을 들고 예수병원 병원장실을 찾았다. 노랗게 빛바랜 진찰권에는 '안월순(어릴적 이름), 28세'라고 쓴 펜글씨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42년 전, 1965년 12월은 안 목사가 예수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 날이다.
안 목사는 그 때 생명을 구해 준 외상값의 몫 1천 만 원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42년간 빚진 마음으로 그동안 예수병원의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교회 개척과 그 후 어려운 교회 사정으로 지금까지 예수병원에 올 생각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예수병원 소식지를 읽던 그해 봄, 예수병원을 생각하며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이제, 외상값을 갚자’ 그 후로도 몇 번을 망설임 끝에 안 목사는 나이가 들기 전에 예수병원을 찾기로 결심을 굳혔다.
당시를 회상하는 안 목사는 “그때 치료비가 얼마였는지 감히 물어보지도 못했다. 세상 물정도 몰랐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모든 치료를 무료로 해 준 예수병원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고 말했다.
#이웃을 위한 선한 사업 앞장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경험한 안 목사는 약속대로 44년간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며 이웃을 위해 선한 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예수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건강에 아무 이상 없는 것도 안 목사가 가난하고 굶주린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다.
교회에서 어려운 주민을 도와주고 남모르게 학생들의 등록금을 챙겨줬다.
안 목사가 가장 열성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문맹자 계몽운동. 글 모르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40명이 모여 공부한다.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꽃도 피운다. 6년간 다녀간 사람만도 300여명에 달한다. 교사를 따로 초빙해 교육의 질도 한층 높였다. 왕궁까지 등하교를 시키기도 한다.
안 목사는 얼마 전 한글학교 할머니한테 편지를 받고 감동했다. 2만 원과 함께 들어있던 편지엔 ‘모사가사추보바’라고 적혀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나중에 물어보니 ‘목사님, 감사합니다, 축복 받으세요’라고 썼다고 한다.
안 목사는 매년 불우이웃돕기와 수재민 돕기에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해외 선교사 후원도 빼놓지 않고 있다.
#고아원 만들어 은혜 갚고 싶다
젊은 시절 크게 다친 몸을 치료하느라 결혼 시기를 놓쳐 지금껏 혼자 살아 온 안 목사. 정말 아무것도 없이 혈혈단신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까지엔 굳은 신앙심 하나로 버텼다.
하지만 아직 안 목사에겐 못다 이룬 꿈이 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갚기 위한 복지사업이다. 노인요양원을 만들어 어르신을 봉양하고도 싶고, 자신처럼 일찍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돌보는 고아원 설립도 굴뚝같다.
하지만 교회 부지 전체가 ‘공원 녹지’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아무런 건축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 목사와 신도들이 ‘공원 녹지’ 해제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 목사는 “널따란 교회 부지에 부대시설을 지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복지사업을 펼치고 싶은 게 이젠 유일한 소망”이라면서 “이 일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갚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했다.
/우창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