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6-10-08 오후 05:36:06 전체기사보기 원격
전체기사
커뮤니티
 
뉴스 > 만나고싶었습니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이런 농악 한국에 없어…문화재 돼야 혀”
만나고 싶었습니다-금강성포 좌도농악 명인 이인수 옹
“이런 농악 한국에 없어…문화재로 지정 돼야”
평생(米壽․88) 금강성포 좌도농악 맥 잇는 이 시대 최고 ‘굿쟁이’
7살 때 장구채 잡아 15살 때 끝장구로 명성 날린 ‘사물놀이 효시’
성당면 전수관서 전승 매진…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마지막 소원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3년 05월 01일(수) 19:35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장구채 손에 쥔 80년 신명나게 살았지”

우리 주변에는 외길만을 걸어온 ‘꾼’과 ‘쟁이’들이 있다. 한 평생 한 가지 일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살아온 장인들이다. 모진 세파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그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앞만 보고 정진한 진정한 삶의 ‘꾼’들이다.

이인수 옹(88․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월명마을). 그는 ‘굿쟁이’다. 이 시대 살아있는 최고의 ‘농악꾼’이다.

꽹과리와 징, 장구, 북 등 사물을 다루는 손놀림은 경지에 올랐다. 특히 장구의 다스름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이 옹은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7살 때 첫 장구채를 잡았다. 성당면 성당포구 장구 우두머리(수장구)였던 큰아버지 이덕근 선생으로부터 장구가락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때 고사리 손으로 칠채굿과 구정놀음(개인놀이)을 전수 받았다.

15살 되던 해엔 끝 장구로 성당포 일대에서 이름을 날렸다. 젊은 시절 농악에 빠져 전국을 떠돌던 그는 1970년 40대 중반의 나이에 임실군 우남면 신기남 선생의 장구가락을 익혔다.

무려 3년간 먹고 자며 거의 24시간 장구채를 놓지 않았다.

당시 내로라하는 농악 패거리 중에서도 가장 이름을 날린 이 옹은 1881년(55세)부터 이리우도 농악단에 들어가 활동했다. 이후 ‘여울굿’이 점점 쇠퇴하면서 농악은 침체기를 맞이했다. 끼를 마음껏 발산하지 못한 이 옹은 몸과 마음이 시들어갔다. 기량이 빼어나고 풍물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던 이 옹은 고향을 떠나 원정길에 나섰다. 인근 이리, 김제, 군산 등지로 떠돌며 그 곳 ‘치배’들과 어울렸다.

‘북’(장구)을 울리며 뭇사람의 흥을 돋우는데 신명을 바친 이 옹은 수 백 년 간 고향 성당면에서 내려오던 ‘금강성포 좌도농악’을 재연, 전승시키기로 결심했다.

그 첫 발이 ‘농악단’ 창설이다. 1992년(66세) 익산 금성초등학교와 인연을 맺고 농악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연구와 발굴에 전념했다. 이 옹의 가르침을 받은 농악단은 전국농악대회를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이와 함께 이 옹은 고향인 성당면 명월마을 자신의 집 마당에 흙벽돌을 쌓아 전수관을 지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 옹의 곁을 거쳐 간 제자들만도 수 천 명에 달한다. 수제자는 임승룡 씨. 임 씨는 현재 함열읍에 거주하며 (사)금강성포 좌도농악 보존회 이사장으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학원을 차려 제자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제자 중 (임)승룡이가 최고지. 장구도 그렇고 쇠(꽹과리)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여. 좌도농악을 보존하고 전승시키려고 애쓰는 모습도 정말 보기 좋아.”

이 옹은 수제자 임승룡 씨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여줬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굿’

이 옹이 전승한 ‘금강성포 좌도농악’은 조선시대부터 성당면 성당포구에서 내려오던 우리나라 전통 굿이다. 성당포구를 중심으로 큰 줄기의 맥을 이어 왔다.

성당포구는 조선시대 200년 동안 국가의 세곡을 쌓아놓고 한양과 마포 포구로 쌀을 옮겨가는 포구였다. 무려 52척의 배가 한양을 오고 갔다.

이때 귀중한 쌀이 잘 도착하도록 기원하는 풍물 굿을 성당포구가 바라보이는 용왕산과 대명산(당집 사물놀이)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져 왔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못하도록 하면서 중단됐다. 이 옹이 풍물을 시작한 7살 되던 해의 일이다.

이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질 뻔한 당산굿은 80년을 오롯이 금강성포 좌도농악을 전승보전한 이 옹의 노력 덕에 매년 익산문화원 주최의 ‘성포별신제’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있다.

전라 우도농악은 불교와 무속에서 유래한 반면 좌도농악은 길굿, 두레굿, 진굿 등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현장음악이다.

길굿(궁굿)은 집집마다 돌면서 악귀를 몰아내고 축복을 빌면서 사람들을 마을 중심으로 이끌어 내어 줄다리기 등 굿판을 만들게 한 굿이다.

두레굿은 농사철에 마을마다 남자 장정들을 선발해 구성한 집단적인 일꾼으로, 이들이 마을에서 농토에 나가고 농사일을 하고 돌아오는 동안 줄곧 연주되는 굿놀이다. 풍년과 흥겨움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진굿은 전쟁 전후에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승리를 기원하고 자축하며 진을 짜서 굿판을 벌이면서 하던 놀이굿이다.

이렇듯 좌도농악은 삶의 현장성이 강하게 배어 있어 우리의 정서에 훨씬 깊게 다가온다. 

#문화예술 전승 계승 ‘시민의 장’ 수상

이 옹의 아호는 월고. 일제강점 암흑기에 성당면 성당리 월명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고향을 지키고 있다.

고된 농사꾼의 피로를 씻고, 파도와 싸우는 어부의 시름을 날려 보내며, 신분 질서의 억눌림과 생활의 고통을 잠시나마 떨쳐버리는 유혹에 이끌려 초등학교를 자퇴하고 농악에 몸담은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80년 간 좌도농악과 함께한 이 옹은 우리 문화 예술이 경시되고, 민족혼과 민족정신마저 흐려지고 있는 현실을 통감하고 후진 양성에 매달렸다.

익산 초․중학교를 돌며 농악단을 구성하고, 시민들을 상대로 전수 활동에 매진했다. 가깝게는 지역 초등학교와 면단위 농악대를 창단하려는 면사무소, 멀게는 전주․김제․부안에서까지 농악선생으로 초빙했다.

이 옹이 혼을 쏟아 지도한 익산 금성초등학교 농악단은 1992년부터 2000년도까지 각종 경연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전국 대사습놀이 장려상을 시작으로 전국학생종합예능발표대회 최우수상 2연패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당시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이란 말이 끊이질 않았다.

장구를 80여 년째 곁에 두고 살아온 이 옹에게 누가 “좌도농악을 수 십 년간 가르치며 터득한 철학이 있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이 소리를 들으면 기분 좋아지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철학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이 옹은 “좌도농악은 수백 년 전부터 맥을 이어온 것”이라며 “이 소리가 계속 이어져 수백 년 후에도 서민들에게 가장 신명나면서도 편한 소리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 ‘굿쟁이’로서 유일한 바람”이라고 소박한 웃음을 짓는다.

이 옹은 “대한민국 농악 중 금강성포 좌도농악이 최고다. 어렵기도 하지만 10채(마디, 우도농악 7채)까지 있다. 농악은 가락이 첫째인데 좌도농악은 가락이 정말 좋다. 그 중에서도 장구를 잘 쳐야 농악이 산다”고 말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제자 양성과 좌도농악 전승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이인수 옹. 평생 곁눈질 한번 없이 굿쟁이로 살아 온 이 옹에게 일생일대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 바로 금강성포 좌도농악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는 것.

이 옹은 “이런 농악은 대한민국에 없다. 수 백 년 맥을 이어 온 농악이 끊길까 두렵다. 전승하고 계승하려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며 “문화재로 지정 받아야 우리 제자들이 힘쓸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옹은 부인 조정례 여사(85) 사이에 아들 기만, 태만, 영근, 딸 성자 씨 등 3남 1녀를 두고 있다. 가훈은 ‘우애롭게 살자’다. 농사(수박·토마토)를 짓는 큰 아들 기만 씨(56)와 함께 사는 이 옹은 며느리 이옥분 씨(56)가 ‘효부’라고 수줍게 칭찬했다.

/우창수 기자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 Copyrights ⓒ익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익산 원도심, 문화산업으로 다시 뛴..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익산 인재 ..
"NS푸드페스타 어디서 열릴까?"…익..
익산시, 미륵사지휴게소 '로컬푸드 ..
한국여성유권자 전북연맹, 익산 한..
신흥, 익산 아동 과자 선물꾸러미 3..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인에 휴식과..
최정호 시장 "전임 시장 행적 지우..
익산영신교회, 모현동 청소년 위해 ..
생산량 860% 향상…익산시, '스마트..
최신뉴스
식품진흥원, 왕궁면민의날 행사에 ..  
이웃에 따뜻한 한끼, 마동 '사랑의..  
평화동에 이어진 나눔…이웃돌봄부..  
남중동 주민자치위원회, 연탄 500..  
원광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2..  
월 15만원 장학재단 기숙사, 저소..  
익산소방서, ‘골든타임’ 비응급..  
익산 공공기관, 울타리 넘어 ‘청..  
정원상 시의원, 시민 다친 파손 인..  
익산여성단체협의회 전통장류 담그..  
㈜원진알미늄, 취약계층에 라면 50..  
‘북딜리버리’ 운영 개선 취지는 ..  
익산산립조합 봉사단, 다이로움 배..  
울트라마라톤 모은 310만원, 시각..  
아이빛유치원, 작은 손길 모아 따..  
인사말 연혁 편집규약 윤리실천요강 광고판매윤리강령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익산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3-81-34955/ 주소: 전북 익산시 인북로 190-1(남중동) / 발행인.편집인: 박종규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규
mail: ikpress@naver.com / Tel: 063-841-1221 / Fax : 063-856-2625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북 다011187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