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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숙 세림악국 약사
곡우(穀雨) 이튿날, 베란다 남쪽 창가로 햇빛이 밝게 비쳐들며 따뜻한 하루가 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마음 놓고 봄을 스케치하기위해 아침 일찍 카메라를 들고 수목원으로 달려갔답니다.
벚꽃이 며칠 전에 개화하기는 했었지만 추위와 강풍, 그리고 때 아닌 봄눈에 다 떨어지고 말아서 봄꽃이 무척 그리웠거든요. 수목원의 자작나무 밭을 향하는 순간 물방울 보석의 밭을 보았어요. 헤아릴 수 없는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쇠뜨기 영양줄기에 맺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어서 영롱하기 그지없었어요.
문득 우리 고장 익산시에 있는 보석박물관에서 본 보석 꽃이 생각났어요. 삼천여개의 다이아몬드와 천연보석으로 만들어진 꽃인데요, 가격은 이십여 억 원에 상당하며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보석 꽃이라고 해요. 그런데 말이지요. 쇠뜨기 줄기에 맺힌 이슬이 만들어낸 영롱한 물방울 보석과 비할 때 저는 그 보석 꽃이 전혀 탐나지 않았어요.
아침이슬이 잠시 잠간 빛나는 존재라고 해도, 일단 마음의 렌즈에 포착하여 오래 오래 지워지지 않을 환희로 빛나고 있는데, 박물관의 보안 장치 속에 갇혀있는 보석 꽃은 영구히 그 폐쇄공간에 머물러 대자연의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말이에요. 물론 우리 고장의 보석 꽃이 세계적으로 자랑거리라는 자부심이 있긴 하지만요, 혹한을 이겨내며 피어나고 바람에 흔들리며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항하사(恒河沙)의 숫자와 맞먹는 듯한 물방울다이아몬드를 마음에 담고 발걸음을 옮기니 설국의 성벽이 보였어요. 전날 내린 봄눈이 쌓였을 리는 없고, 아, 조팝나무덤불이 송이송이 하얀 꽃을 피워 설국의 성루와 성벽을 이루고 있었어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새하얀 갈기를 가진 숫 사자가 위풍당당하게 사월의 숲속에 서있는 것처럼도 보였지요. 우렁찬 포효도 들리는 듯 했어요.
새하얀 조팝나무꽃송이로 티아라를 엮어 머리에 쓰면 청초한 사월의 공주처럼 보이겠다는 동화의 감상에 젖으며 사월 숲속을 우아한 스텝으로 걸으며 벚나무 길에 이르렀습니다. 벚꽃이 거의 다 지고 새 순이 돋아나고 있었지만 바람이 불 때 마다 연분홍 꽃잎이 날리며 숲속 나무 테이블에 쌓입니다. 마치 정원의 야외식탁에 반가운 벗을 초대해 놓고 깔아놓은 꽃잎 레이스자락처럼 보였어요. 그 식탁엔 매화꽃 한 송이 띄운 맑은 차 한 잔이 놓여 있어도 운치 있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홍매화가 아직도 피어있네요. 시원스럽게 아치를 이루며 늘어진 수양홍매는 그네를 타는 춘향(春香, 봄향기)의 자태로 창공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사월은 쇠뜨기 줄기에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었고, 조팝꽃이 새하얀 갈기로 위풍당당하게 포효하며 서있는 숫 사자의 위용이었고, 조팝꽃 티아라를 쓴 공주의 어여쁜 자태였으며, 홍매화가 고운 맵시로 창공을 가르는 봄향기였어요.
또 하나 추신한다면 이제 곡우가 지났으니 대지에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해도 잘 자라는 절기가 돌아온 것이지요. 너무 일찍 부지런하게 노지에 모종을 심은 분들의 전언에 의하면 모종들이 추위에 그만 얼어 죽었다고 해요.
계사년 올 사월은 그야말로 긴박한 국내외 정세와 변화무쌍한 일기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옛말이 가슴깊이 다가왔지만 저는 생각을 바꾸어 이 사월이 잔인한 계절이 아니고 더욱 아름다운 내일의 희망을 위한 기다림과 연단의 계절이라고 생각해 보았어요.
한 달 전에 고향집 마당에 심어둔 사과나무에서도 잎이 나오고 있어서 깜짝 반가운 사월이었습니다. 마음 밭에도 향기로운 꽃 한 송이 피울 씨앗을 파종하기 위해 사색의 서랍을 뒤적이고 있는 사월(四月, 思月)이라고 나직막이 발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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