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수 노무법인 수 공인노무사
2009년 10월 어느 날 오래간만에 절친한 친구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래간만의 전화임에도 친구는 안부를 묻기도 전에 친형님의 사망소식을 전하며, 고령의 부모님과 함께 형님이 살고 있는 안산에 도착하여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있다고 하였다.
친구의 형님은 결혼 후 안산의 한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7살 된 딸 하나를 둔 가장이었다. 친구와 부모님들은 갑작스런 사망소식에 몹시 당황한 듯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청하여 왔다.
평소 형님과 잘 알지는 못하였지만, 친구로부터 간간히 들었던 형님의 일상은 이 나라 대다수의 근로자들이 그러하듯 집과 회사 밖에 모르는 성실한 근로자였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던가! 형님이 쓰러지시던 날 마침 형수님은 7살 된 딸아이와 함께 친정에 내려가고 없었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형님은 잠을 자다 심근경색으로 홀로 집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형님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친구와 형수님으로부터 형님의 최근 생활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이 그러한지는 알았지만,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한가정의 가장으로 어디 힘들다고 하소연도 못하고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만 했던 형님의 모습이 떠올라 무척이나 심난하였다.
형님의 죽음을 단순히 개인적인 질병에 따른 사망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친구와 친구의 부모님, 형수님께 형님의 사망은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에서 오는 사망일 수도 있음을 설명하고, 조심스럽게 산재 얘기를 꺼냈다.
장례절차가 마무리되고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형님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받기 위한 고통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형님은 주야간 2조 맞교대로 근무하면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작업일정을 수행하여야 했다. 사망하기 1달 전 발생한 공장화재로 인하여 화재 뒷정리를 하느라 휴일도 반납한 채 출근을 하여야 했다. 12시간 맞교대도 부족하여 집에는 잠깐 들어와 옷만 갈아입고 출근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에는 땀 냄새로 7살 된 딸아이가 근처에 오지도 못할 정도였다니 형님이 느꼈을 심적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은 더없이 무거워져만 갔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회사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였고, 근로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근로복지공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회사의 직장동료들 또한 회사에서 오는 불이익이 두려워 사실관계진술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출퇴근 기록하나를 확인하기에도 너무 힘이 들었다. 6개월에 걸친 자료조사와 진술확보 등을 통하여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접수 할 수 있었고 약 1년이 다 되어서 다행히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현대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는 “나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이 죽는 법은 없다’는 스코틀랜드의 속담을 믿는다. 인간은 지루함과 심리적 갈등, 그리고 질병 때문에 죽는다. 일이 많고 힘들다고 해서 죽는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서 일이 많고 힘들어 죽는 사람을 너무도 많이 목격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 죽음이 과로와 스트레스 등 일이 많고 힘들어서 임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단적으로 우리지역의 특화산업인 보석산업에 근무하였던 보석세공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폐증으로 투병하고 있고,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석재근로자들은 또 어떠한가! 30년 이상을 석재산업에서 근무한 근로자들의 건강상태를 살펴보면 진폐증, 허리 디스크, 난청 등의 각종 업무상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산업사회의 폐품취급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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