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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의 웅담’이라 불리는 우렁이. 예로부터 산삼, 해삼, 가시오가피, 까마귀와 함께 오삼 중 하나로 불린다. 단백질, 칼슘, 철분이 풍부해 ‘자연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은 항암효과까지 알려져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우렁이 하나로 ‘한해 5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귀농인이 있다. ‘국내 우렁이 양식 일인자’로 통하는 이상규 씨(59)다.
천주교 성지 나바위성당이 있는 망성면 화산리 5천 평의 비닐하우스와 경남 김해 7천 평 농장에서 한해 100톤가량을 출하하며 쏠쏠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직원만 해도 익산에 2명, 김해에 4명을 둔 거대농장주. 전국 유통망까지 갖추고 있어 이 씨에게 도움을 받는 우렁이 양식 농가도 100여 명에 이른다.
이 씨의 농장엔 우렁이를 삶고, 탈피해서 포장까지 하는 설비도 갖춰져 있다. 포장한 우렁이는 전주와 익산 등의 학교급식은 물론 백화점, 쌈밥 집 등 전국 각지로 보낸다.
영농철인 5~6월엔 우렁이농법 농가에게 보급한다. 전체 출하량 60~70%를 차지하는 알토란같은 수입원이다.
이 씨는 젊을 땐 ‘잘나가는 의류회사 사장님’이었다. 20여 년간 서울 구로공단에서 직원 80명을 거느리며 니트와 셔츠를 만들었다. 당시 동대문과 남대문에서 인기가 높았고, 일본에 수출도 했다.
그러던 그가 귀농한 건 1997년. 열여덟 살에 용안면을 떠난 후 마흔세 살의 ‘금의환향’이었다. 여생을 편히 보내기엔 너무 젊은 나이. 당시 농업을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찾은 것은 ‘우렁이 양식’이었다.
하지만 주위에선 그를 미쳤다고 비꼬았다. 이전에 우렁이 양식을 했던 사람들이 모두 망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평가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성공의 희망을 봤다. 판로가 거의 없어 수년간 손해의 연속이었지만, 힘들수록 판로확보에 열을 쏟아 결국 성공을 일궈냈다.
“우렁이 양식은 여전히 힘이 들고 어렵지만 손을 놓을 수 없네요. 직원과 양식 농가 등 저에게 딸린 식구가 100여 명이거든요. 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농사지어야죠.”
/우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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