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남 수필가
밤새 촉촉이 비가 내려 포도 위에 봄의 주단이 깔렸다. 약간 검은 듯 내리깔린 주단 길은 어두운 색감인 동시에 붉은빛이 돌아 힘 좋은 머슴의 근육질만큼이나 자극적이다. 행여 그 힘이 내게 전해질까, 오감을 열고는 괜스레 과한 몸짓을 하며 아침 걷기를 해 본다. 자작자작 우산을 치는 빗방울의 음률은 벗하기 그만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빗방울의 말은 옹알이인 듯 수런수런 하지만 격식 차린 자연의 언어인 만큼 대화하기 그만이다. 발길을 놓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이끌듯 따라와 굳어진 마음에 물길을 터놓곤 하니 말이다. 그 바람에 온몸의 세포가 열려 내 몸에서도 봄의 음률을 닮은 율동이 격한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에돌아 산모퉁이에 이르자 수굿이 낮은 자세를 고집하며 고뇌했을 개나리의 의중이 눈에 띈다. 등을 한껏 구부린 채 검불에 몸을 숨긴 탓인지 늘 다니던 길, 한 번쯤 눈에 들어왔음 직도 하건만 존재에 대한 기억이 없었음은 참으로 기이하다. 개나리 스스로 초라함으로 위장한 생명보존의 본능일까. 아니면 식물에도 있을 모성이 새싹의 천공인 수관을 견고히 했기 때문일까. 한걸음 비켜서서 가지의 마디마디 함초롬히 투명 구슬을 등에 업은 모습을 바라보자니 오랜 기다림 끝 해후이나 이치를 터득한 득도의 여유가 느껴진다. 천지 부모(天地父母)라, 만물 하나마다 하늘이 들어있어 존재하니 그 존재를 부모처럼 먹여 살리는 것 또한 자연 즉, 하늘과 땅이라 했다. 이런 우주적 사고를 개나리도 깨달아 싹을 내거늘 세속적 생각에 얽히고설키어 자연을 도외시하였으니 애당초 내게 봄이란 늦은 장보기와 무에 다르랴. 참으로 게으른 몸짓이라 염려하며 빗방울에 고인 봄을 가만히 바라보자니, 지난 시간 내가 뿌려 견고히 해 놓았던 삶의 편린이 떠오르며 잔부끄러움이 인다. 잦아드는 봄비에 우산을 접었다. 습과 건, 피안의 간극을 좁혀 보니 내 마음에도 촐촐 물드는 소리가 난다. 바삭대던 몸이 낭창낭창 유연해진다. 목청을 울린다면 버들피리소리가 날 것만 같아 나직이 목울대를 튕겨본다. 무언가 툭 튀어나와 빗물 가득한 거리에 확 퍼진다. 그것은 기압의 눌림으로 한없이 낮아지나 싶더니 가장 낮은 자리에서 부활을 준비하는 생명에게로 가는 것이 아닌가. 아, 봄은 낮은 빗방울 소리와 계절을 찾으려는 수런거림을 타고 오나 보다. 몸을 낮춰 허리를 꺾었다. 아주 느린 동작으로 검지를 펴 나뭇가지에 매달린 빗방울을 따라 마디를 더듬어본다. 살갗의 감각을 두드리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보드랍게 내 손끝을 잡아끄는 느낌. 어머나, 가장귀 어귀에 꽃눈이 노랗게 문 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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