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시인·국악예술원 소리뫼 대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라는 구절을 부를 땐 아무렇지도 않다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이란 대목에선 가슴이 아려지려 한다. 흔히 봄을 ‘여인의 계절’이라 하지만 ‘봄날은 간다.’의 ‘연분홍 치마’는 왠지 처연하고, ‘씹어 무는 옷고름’은 봄날을 보내는 이의 절절함을 더한다. 지난 주말에는 봄이 온다기에 정신없이 마중을 다녔다. 아직은 봄이 문턱을 넘어 불처럼 번지려는 아랫녘의 산수유는 노랗게 앉아 재잘거리고 있는지, 매화는 환하게 웃을 준비는 되어 가고 있는지, 바닷가에 들러 육지로 나오길 학수고대 애타는 파도의 처절한 소리는 듣고 왔다.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마중물 체험을 하였다. 요즘 봄 기분 맞히기가 여간 힘들다. 날씨의 변덕이 죽 끓이듯 가는 겨울이 시샘을 하는지 쉽사리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는 꽃샘추위 칼바람은 시어미 심술같이 주춤 주춤하면서도 봄 색시의 첫 미소가 참으로 화안하고 정겹다. 아무리 그러한들 계절은 제 할 일 한다. 산 중턱에 복사꽃 능금 꽃이 피는 내 고향,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지천에 자지러지던 유년시절의 동산, 이맘때면 이래저래 봄을 숫처녀 젖가슴 부풀듯 맘만 들뜬다. 시내도 가로수가 새 옷을 입느라 분주하다. 담장 넘어 목련이 형광등같이 불을 켜고 있다. 엊그제 겨울에 존재조차 몰랐던 나무가 살이 탱탱하게 오르고 있다.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되고 마침내 얄궂은 노래가 되듯 몰락하는 봄날에 바쳐진 이들의 곡조는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닌 슬픔의 존재감을 이끌어내기에 족하다. 낙엽이 자연스런 조락(凋落)으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그린다면 낙화는 비애에 젖게 한다. 물론 휘날리는 꽃잎들의 군무에서 환희를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봄날의 복잡한 심경은 개화와 낙화의 시공간 속에 있다. 봄비에 벚꽃 사라지듯 속절없이 그렇게 봄날이 가고 있다. 예전엔 간다는 기별이라도 있더니 이제는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 와중에 우리 같이 글을 쓰는 사람은 봄과 고향은 상상력의 공간이 된다. 하지만 이런 봄을 정신없이 누리다보면 한 점 늙어진다는 것이다. 봄은 일 년의 시작이다 시작이라면 진행 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누구든 지금의 나이에 만족하는 사람보다 아쉬워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내 나이도 벌써 이 만큼이다. 어머니 항구를 떠나 여기까지 왔는데 어머니는 몇 해 전 우리 배에서 내리셨고 벌써 내 인생이 썰물 지는 소리가 처연하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 거창한 희망도 없었고 꿈도 없이 자란 것 같은데 살다보니 꿈과 희망이 생기고 흔적이 남는다. 세상사가 생각대로 되어가는 요즘이 재미가 맛있다. 내 인생에 좀 더 일찍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을 가끔하지만 이만 한것도 다행으로 감사하며 살아야지 욕심일 뿐이라고 위안한다. 세상이치 때가 있고 순리가 있는 것 아닌가. 살면서 자신의 길인데도 아니 가는 것도 손해요 자신의 길이 아닌데도 굳이 가는 것도 인생허비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도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느린 것,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다가 잃어버리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 아무리 좋은 것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시간이라고 한다. 마음은 아직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봄날’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어느 날 문득 바라보면 시간은 어김없이 한 해 맨 끝자락에 있다. 떠나보내지 못할 미련과 안타까움이 남아 있지만 우리는 그 유혹을 뿌리치고 떠나는 한 해를 보낼 채비를 서둘러야겠다. 피천득 선생은 “잃었던 젊음을 다시 가져오게 하는 봄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기뿐일” 이라 했다. 삼라만상 모든 일을 애인 대하듯 해야겠다. 내 인생의 봄날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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