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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다소 한산한 익산시의회. 말쑥한 정장 차림에 화사한 넥타이를 맨 중년 신사가 유독 눈에 띈다. 두툼한 노트를 옆에 끼고 위 아래층을 오가며 몇 시간째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때로는 서너 명의 직원과 토론을 벌이고, 때로는 간부 공무원과 머리를 맞대고 상의도 한다. 시의원 배지만 없으면 영락없는 공무원이다.
다름 아닌 임병술 산업건설위원장(59)이다. 임 위원장은 의회가 열리지 않는 날에도 어김없이 나와 민원인과 공무원들을 만난다. 대부분 익산시 농촌‧농업에 대한 이야기다. 농업 정책 개발과 예산 확보에 관한 논의는 한 번 불붙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지역구가 ‘낭산‧망성‧여산‧금마‧왕궁‧춘포‧ 삼기면’ 농촌지역이라 농업에 더욱 애정을 쏟고 있다.
‘농민의 대표’로 2006년 시의회에 입성해 재선에 성공한 임 위원장은 위기에 빠진 농업‧농촌을 살리기 위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본업인 농사일에다 시의원까지 소화해내려면 잠시도 한 눈 팔 겨를이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 40두 가량의 한우 관리하랴, 목이버섯 재배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판이다. 25년 넘게 해온 일상이라 지칠 법도 한데 정다운 고향마을(왕궁면 평화촌마을)에서 일하고 숨쉬기 때문에 마냥 고맙고 즐겁기만 하다.
이웃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어울리기 좋아하는 평범한 농부지만 시의원 신분으로 돌아오면 날카롭고 저돌적이다. 항상 지니고 다니는 노트엔 농업정책 개발에 대한 메모로 빼곡하다. 농민들을 수시로 만나 애로사항을 듣고 그때그때 적는다. 신문을 보다가 메모하는 습관도 생겼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현장에서 느꼈던 어려운 점을 기록하기도 한다. 올 초에 장만했던 노트는 벌써 해지고 시커멓게 때가 묻었다. 임 위원장의 의정활동일지이자 농업 정책개발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위기의 농업을 살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 확보입니다. 도농복합도시인 익산시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좀 부족합니다. 현재 익산시 전체 예산의 14%(1천여억 원대)에서 20%로 끌어올려야만 우리 농민들이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자나 깨나 익산시 농업 발전방향 연구
익산시 농민회장을 역임한 임 위원장은 농민 대표로 시의원 배지를 달았다. 때문에 익산시 농업 발전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의정활동에 임한다. 더구나 한국 농업이 위기에 빠진 터라 부담감은 백배천배 더한다.
온난화 현상으로 3년째 연속 흉작을 면치 못하고 있고, 농촌 고령화 현상은 해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정부의 농촌 예산은 2000년 9%에서 올해 6%대로 뚝 떨어졌다. 농업을 포기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사상 유래 없는 총체적 위기다.
“도시근로자 대비 농가소득이 76%에서 최근 65%로 떨어졌습니다. 돼지 한 마리를 출하하면 7~8만 원, 소 한 마리 팔면 100만 원 가량을 손해 본다고 합니다. 농민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위기의 농촌을 살려야 대한민국이 행복해집니다.”
익산농업 살길은 예산 확보뿐이다
제도권 안에서 누군가 농촌‧농업을 위해 싸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에 정치에 입문한 임 위원장은 익산시 농업 발전 방향에 대해 거침없이 사자후를 토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농업 관련 예산 확보라는 게 임 위원장의 철학이다. 적어도 익산시 전체 예산의 20%가량을 확보해야 맘 놓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음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품종 개발. 제주도 귤이 해남에서 재배되고, 대구 사과가 강원도에서 열리는 온난화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익산에 맞는 품종 개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것.
임 위원장은 이밖에 △농 배수로 정비 △비닐하우스 보조사업 확충 △익산 쌀 품질향상을 위한 사업 지원 △양질의 조사료를 만들 수 있는 축산 발효사료 장비 지원 등을 익산시 농업발전 방향으로 꼽았다.
“올해 의정 활동의 최고 목표는 예산 확보입니다.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익산 농업발전을 위해 열심히 뛸 각오 입니다.”
수구초심에 귀향한 영‧호남 커플
임 위원장은 엔지니어 출신 농사꾼이다. 전북대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1987년)에서 7년간 기술원으로 일했다. 당시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으나 포스코 장학생이라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낯선 타향살이였지만 임 위원장은 여기에서 평생의 반려자인 부인 권미숙 씨(금마 미륵초 교사)를 만났다. 야학 수학교사로 봉사활동을 하다 마침 국어교사로 온 부인과 백년가약을 맺은 것.
“포스코 현장 일이 돌발사태가 자주 일어나 대타로 수업에 많이 들어갔어요. 고마운 마음에 술을 자주 샀는데 그만 정이 들어 결혼까지 골인했네요.”
7년 간 객지에서 열심히 일한 임 위원장은 고향마을이 그리워 귀향을 결심한다. 가족, 친지와 즐겁고 힘들고 외로움을 함께하며 더불어 살기를 원했기 때문.
그래서 선망의 대상이던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제출하고 귀향했다. 나이 35살 때 일이다.
제일 처음 시작한 건 젖소를 택했다. 가장 근면해야 할 수 있는 일과 어려운 일을 찾다보니 젖소를 택했다. 8마리로 시작한 젖소가 현재는 한우 40두에 이르고 있다. 제법 큰 규모다. 물론 쌀 농사도 함께 지었다.
그러다 익산시 쌀 전량 수매 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농민회 운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1995년 익산시 농민회장을 역임한데 이어 도연맹 부의장까지 지냈다. 당시 넉 달 동안 야전생활하며 쌀 7천 가마 전량 수매를 관철시키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때 제도권 안에서 누군가 농민을 대변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엔지니어 출신 농사꾼이 정치판에 뛰어든 동기다.
임 위원장은 개인 자격이 아닌 농민 대표로 출사표를 던졌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절치부심 끝에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도전한 2006년 선거에선 당선의 영예를 안고 첫 시의회에 입성했다. 이어 2010년 다시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해 산업건설위원장을 맡고 있다.
불러주는 곳 어디든 가는 ‘두주불사’
임 위원장은 한우 밥 주고, 목이버섯 재배하는 농사일과 의정활동에 쌓인 피로는 거의 술로 푸는 편이다.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 술을 자주 가깝게 한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2병은 거뜬히 마시는 두주불사이다. 가급적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려고 노력(?)중이다.
자주 만나 의정 활동에 대해 논의하는 동료는 농민회장 출신인 양종규 의원을 비롯해 소병홍‧손문선 의원 등 다양하다. 농협 조합장들과도 수시로 만나 농업에 대해 의논한다. 농민회원과 전북도연맹 회원들은 농업 정책을 개발하는데 큰 도움을 주곤 한다.
술 마시는 게 취미(웃음)라는 임 위원장은 장기‧바둑 등 앉아서 하는 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의원이 되고 나선 바쁜 의정활동으로 꿈도 못 꾸고 있다.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결혼해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공부하는 큰 아들 대환(31)이와 ROTC 소위로 임관한 둘째아들 정환이가 임 위원장이 가장 아끼는 보배다. /우창수 기자
임병술 위원장이 걸어 온 길
- 왕궁초등학교 졸업(39회) - 전주서중학교 졸업(18회) - 전주해성고등학교 졸업(제7회) -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졸업 - (주)포스코 근무 - 익산시 수세폐지 대책위원장 - 익산시 추곡 전량수매 대책위원장 - 광역쓰레기 소각장 설치 반대 투쟁위원 - 바울 RPC 피해농가 대책위원 - 왕궁 춘포 송전탑건설 반대 대책위원회 간사 - 왕궁초·왕궁중 운영위원장 - 왕궁면 농민회장, 익산시 농민회장 - 제5, 6대 익산시의회 의원 - 익산시의회 운영위원, 예산결산위원 - 익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현) - 전국농민회 전북도연맹 부의장(현) - 환경운동연합, 통일연대 회원(현) - 익산시 농특산물 공동브랜드 추진위원(현) - 농림수산심의회 위원(현) - 농업농촌발전추진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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