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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익산시장
언제부터인가 ‘푸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사전적 의미로 가난과 빈곤을 뜻하는 이 단어는 우리시대의 사회경제적 현상과 맞물리면서 여러 가지 단어들과 결합해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워킹 푸어,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부모의 경제력 붕괴는 청소년들의 교육기회마저 빼앗아간다. 전국적으로 한해 약 6만 여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중퇴한다고 한다. 각자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상당수는 가난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가난으로 인한 교육소외 문제는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이 단지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사회적 하층계급이나 경제적 빈곤 계층으로 떨어져 결국은 가난이라는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가난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부끄럽거나 불편한 것쯤은 문제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언가 시작해 볼 희망조차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가난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그 다음 자손에게로 족쇄처럼 대물림되어 또다시 교육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결국 개천에서 용이 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답은 그 안에 있다. 대를 잇는 가난을 탈출하려면 교육을 통해서 운명을 바꿔야한다. 예부터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가난이라 했는데, 개인 혼자서 극복하기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가난에 갇힌 학부모와 학생들이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전부를 대신해줄 수는 없지만, 지역사회의 도움은 불가결하다. 우리가 보편적 복지 정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바로 저소득 계층에 대한 교육정책인 것이다. 복지정책으로 미래의 성장 동력인 청소년들이 교육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아 자신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주지 않는다면, 교육격차로 인한 가난의 대물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취약계층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공평한 출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그 바탕이 되는 주거환경 개선을 비롯해 생계, 의료, 학습 및 문화 활동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살피고, 제도권 밖에 있는 소외계층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삶의 질 향상과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지역사회가 다 같이 실천해야한다. 가장 큰 복지는 교육의 기회와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일자리를 얻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한다. 빈곤층이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더 많이 누리려면 우리 모두가 협력해야한다. 복지가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이, 다시금 교육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일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적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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