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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시인·소리뫼국악단 대표
나의 고향은 서수면 금암리다. 그곳은 군산과 익산의 경계선이 동네를 가로지르는 신작로가 지나는 곳이어서 이 친구 저 친구 집에서 놀다보면 하루에 군산, 익산을 몇 번이고 오가는 경계선이 있던 그곳의 유년은 언제나 그리움이거나 절절함이었다. 또 가을이다. 어린시절 높고 파란 하늘아래 들판의 오곡들이 풍성하게 영글어 가는 가을에 떠오르는 것은 가을 운동회와 추석명절이겠다. 펄럭이는 만국기 아래에서 펼쳐지는 한마당 잔치 가을 운동회는 아련하고 달콤하게 떠오르는 추억의 한 자락이 될 것이다. 어울림과 경쟁이 공존하는 온 동네 축제,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수확을 잠시 미루고 그날만큼은 모두가 신나는 축제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통에 학교가 인산인해였다. 며칠 전부터 곤봉돌리기 , 체조, 달리기등 예행연습에 개선문을 만들고 운동회의 의식같은 만국기로 분위기를 고조 시킨다. 청색이나 혹은 백색의 결의에 찬 복장으로 부모님 손잡고 바람에 펄럭이는 만국기 아래 들어서면 주인공이 되어 우쭐했고 새마을 엠프에서 나오는 오랜만에 민요소리가 흥겹다. 커다란 원통 굴리기, 뜀틀 넘기. 엄마아빠 손잡고 달리기 모래주머니로 소쿠리 터트리기 청군만세 백군만세를 외치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햇밥에다 찐 고구마 찐 달걀 찐알밤 갖가지 음식을 먹을 차례 그날만큼은 개구쟁이우리에게 엄마 아빠도 너그럽다. 오후에 이어지는 동내 대항 릴레이계주는 운동회의 흥분과 절정이다. 그 흥겨움 뒤에 또 하나의 유년의 추석, 지금처럼 먹거리가 많진 않았어도 마음만큼은 보름달만큼이나 풍성했던 것 같다. 미리 사다 놓은 과일에선 단내가 풀풀났고 추석에 입을 새 옷은 추석이 올 때까지 입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추석이 되면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고 온동네 음식냄새가 진동한다. 모처럼 장에 다녀오신 어머니 일손이 바쁘기 시작한다. 산에서 밭에서 채취한 각종 나물을 묻힌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묵을 만드느라, 송편 반죽을 만드시느라 연신 부엌을 들랑날랑 바쁜 걸음을 했다. 솥뚜껑 뒤집어 부깨미를 부치는 지지지 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아버지는 마당에 풀도 뽑고 집안의 그것을 청소 하신다. 덥수룩하시던 머리도 단장해야 한다, 덕분에 동네 이발소는 명절 대목 턱을 단단히 누리는 중이다. 오시는 길에 마을에서 갓 잡은 돼지고기 맛은 지금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있을 때쯤 이집 저집의 굴뚝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춤을 추며 가을 하늘에 승천을 한다. 고향으로 오는 누나 형들을 말랭이나 버스종점까지 한참 멀리 마중 나간다. 추석날, 들뜬 마음에 졸리다 잠든 새벽 어머니의 부산함에 깨어난다. 우리는 빨리 차례를 지내기를 고대한다. 전날 장만한 음식을 차례를 지내고 먹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참았던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오래 입어야 한다며 일부러 큰 옷을 장만해도 기분이 좋다. 새 옷 새 양발 신고 폼나게 나갈 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버지 따라 성묘를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자동차가 없는 시설이라 쉽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버스를 타는 것은 기본이고 밭고랑 논두렁을 몇 번을 지나야 한군데 또 산등성을 한참 타야 한 군데 들과 마을을 지나쳐야 야산에 또 한군데의 묘가 있으니 일종의 성지 순례나 다름없이 10리,20리를 멀다않고 가야 하는 어린 걸음으로는 멀고도 멀었다. 그렇게 걸어서 성묘를 다니면 한나절은 그냥 간다. 그래서 추석날에 그 먼길을 걷지 않을 요량으로 비가 오기를 기다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명절이면 친구들과 해야 할 일이 있다. 모처럼 생긴 용돈으로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올해도 성묘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곳곳에 피어있는 은빛 억새는 우리들을 환영하는 것 같고, 산 지락의 휘둥그레 열린 감들은 우리들을 보고 얼굴을 빨갛게 붉힌다. 단풍 채비를 하고 있는 산과 청명한 하늘아래 길가에 도열한 코스모스는 우리들에게 가을날의 낭만을 선사한다. 전설이 되어버린 운동회는 체험학습으로 어머니 손맛이 그리운 명절제수음식은 주문으로 철리 해버리는 요즘 가을날의 동화가 성묫길에 마주치는 동창생의 늙어가는 모습만 큼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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