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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명성 익산고구마 '대부' 양창석 씨
만나고 싶었습니다-‘고구마 박사’ 양창석 씨

50년간 고구마 재배 대농 꿈 이룬 ‘선구자’

우리나라 최초 고구마 밭에 비닐 씌우고 박스 도입한 ‘산증인’

5대째 일군 팔봉 덕기동 농토서 황금알 낳는 황금고구마 재배

3부자 18만평 연 11억 매출…“노하우 두 아들에게 전수할 터”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2년 08월 30일(목)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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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구마 농사의 선구자.’

‘황금알을 낳는 황금고구마 재배의 달인.’

‘가마니 대신 박스를 도입해 유통업계에 혁명 일으킨 기업인.’

익산시 덕기동 서성마을에서 평생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사꾼’ 양창석 씨(77)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수더분한 모습에 너그러운 인상은 영락없는 마음씨 좋은 천상농사꾼이다. 하지만 ‘고구마’ 농사에 관한 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단연 돋보이는 국보급 농사꾼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밭에 비닐 피복을 도입한 주인공이 바로 양창석 씨다. 가마니 대신 박스에 고구마를 담아 내다팔아 유통업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온 선구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지인들은 양 씨에게 붙은 수많은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라고 이구동성이다.

 

 

 

‘고구마 밭에 돈을 깔다’

양 씨가 고향 터전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27살 때부터. 올해로 꼬박 50년이다. 당시 밀․보리 후작으로 6월에 심어 9월쯤 수확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부리는 농토가 많아지면서 자연 고구마 농사도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일손도 많이 갔다. 거의 매일 잡초와의 전쟁을 치렀다. 잡초를 뽑느라 정작 고구마는 뒷전이었다.

그러다 비닐 피복을 착안했다. 고구마 밭에 비닐을 덮어 잡초를 잡으면 일손이 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닐 값이 엄청나 다른 사람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을 때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비닐 피복’ 고구마 농사를 지은 셈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 키만큼 자라던 잡초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잡초를 잡으니 태양열을 많이 받아 열매(고구마)가 많이 달리게 됐다. 색깔도 먹음직스럽게 엄청 좋아졌다. 맛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향상됐다.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고구마 재배의 달인’이란 명성도 얻었다. 전국에서 벤치마킹하러 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금은 전국 어디에 가도 비닐을 씌어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다.

양 씨가 1979년 교통사고를 당하고 3년간 쉬다가 1982년 전남 해남 땅에서 고구마 농사를 지을 때 일이다. 밭에 비닐을 덮어 고구마를 심으니 동네 사람들이 “땅에다 돈을 깐다”고 비아냥거렸다. 몇몇 말쟁이들은 “전라북도 사람이 객지에 와서 돈 자랑 한다”고 수근 댔다.

하지만 그런 비아냥스런 놀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수확기 때 모두들 깜짝 놀랐다. 수확량도 엄청날 뿐만 아니라 맛과 색깔이 빼어나 전국 각지에 값 비싸게 출하됐다.

그 이듬해부터 너도나도 비닐을 깔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양 씨는 농사 비법을 숨기지 않고 정중히 가르쳤다. 사실 고향 익산보다 해남에서 더 알아주는 것도 여기에 있다. 어느새 ‘해남 스타’가 돼 있었다.

 

 

땅 끝 마을 해남스타 고향서 ‘혁명’

5년간의 외도(?)를 끝내고 고향에 돌아 온 양 씨는 더욱 더 고구마 농사에 매달렸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없었지만 열성만큼은 식지 않았다. 물론 농사를 지을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던 차 눈에 번쩍 뜨이는 걸 목격하게 된다. ‘바나나 박스’다. 김천에서 가져온 바나나 박스엔 하지감자가 가득했다. 그런데 마치 밭에서 금방 캔 것처럼 감자의 (색)깔이 좋았다.

양 씨는 곧바로 가마니 대신 박스에 고구마를 담아 출하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가마니 60kg 가격과 박스 25kg 가격이 똑같이 거래됐다. 그날로 서울에서 박스를 맞춰 고구마를 담아 시장에 내놓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박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운반하기 편하고 밭에서 금방 캔 것처럼 색깔을 유지하게 하는 고구마 박스는 1~2년 사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고구마 박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양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금마에 사는 소병화 씨에게 박스 공장을 차릴 것을 권유했다. 박스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소병화 씨 공장을 소개해주는 것은 당연지사. 양 씨 덕분에 소병화 씨는 어느 정도 돈을 모은 재력가가 됐다.

수백 년 간 고집해오던 가마니를 과감히 버리고 유통업계에 혁명을 불러온 고구마 박스는 우리나라 고구마 농사의 일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익산시농업기술센터 류문옥 소장은 말한다.

 

 

18만평 11억 매출 ‘기업가’로 우뚝

양 씨는 덕기동 서성마을 고향에서 5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영원한 농민의 아들’이다. 지금도 이곳에서 장남 귀용 씨(46)․ 차남 귀철 씨(44)와 함께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다. 무려 18만평 규모다. 축구장 84개를 합친 면적이다. 한해 수확량만도 1천400여 톤에 달한다. 박스로 계산하면 7만 박스다. 남성고등학교 앞에 자리한 ‘소라산’ 높이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연 매출액은 11억 원 정도.

이처럼 규모가 커지면서 2년 전부터 ‘익산고구마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대표는 둘째 아들인 귀철 씨가 맡았다. 고구마는 익산시 농․특산물 공동브랜드인 ‘탑마루’로 출하하고 있다. 주 무대는 서울 가락동시장과 대구농산물시장. 이곳에선 이미 ‘명품’으로 소문이 나 비싼 가격에 불티나게 팔린다.

호박고구마를 비롯해 자색고구마, 황금고구마, 일반고구마 등 4가지를 재배하고 있지만 맛과 품질 면에서 월등한 황금고구마가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3부자 표 황금고구마’는 (색)깔이 좋고 크기가 웬만한 성인 머리만큼 커 최상품이다. 30일 정도 숙성시켜 먹으면 그 맛을 따라올 고구마가 없다. 입안에서 녹는 단 맛이 일품이다. 섬유질도 풍부해 건강식품으로도 인기 만점이다.

양 씨는 “황금고구마는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강해 냉해 피해가 적다”며 “30일 정도 숙성시켜 먹으면 꿀 맛”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저장기법 개발 시세 맞춰 ‘출하’

양 씨의 성공신화엔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저온저장고. 수확한 고구마를 냉장창고에 보관하다 시세가 맞을 때 내다 팔고 있다. 주먹구구식 농사에서 선진 마케팅 기법을 도입한 것. 이 역시 익산 최초다.

생물인 고구마를 저장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지만 열처리를 한 후 저장하면 색깔과 맛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제값을 받을 수 있다고 양 씨는 귀띔한다.

양 씨는 50평 규모 2개의 저장고를 3~4개로 늘릴 요량이다.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두 아들이 고향에 정착해 사업이 번창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양 씨는 “고구마 농사는 남이 잘 짓는다고 해서 따라하면 백이면 백 실패 한다”며 “농사 기법을 터득하고 거짓 없이 진실 되게 지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양 씨는 두 아들에게 별 잔소리가 없다. 서로 상의하고 스스로 터득해 가는 모습을 보면 그저 흐뭇할 뿐이다. 하지만 언젠간 두 아들에게 50년 노하우를 전수해 줄 준비를 하고 있다.

평생 고구마와 함께한 ‘고구마 농사 선구자’ 양창석 씨. 고구마 농사처럼 다복한 가정을 일군 가장이다. 부인 이정순 씨(75) 사이에 딸 미영․선희와 아들 귀용․귀철․용국(39) 등 3남 2녀를 두었다. 지금은 모두 다 장성해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고구마 농사만큼 자식농사도 풍성하게 잘 지은 우리시대 최고의 농사꾼이다. /우창수 기자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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