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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시인·소리뫼국악단 대표
연일 40도가 기웃거리는 불볕더위가 정수리를 쪼아는 통에 바깥나들이가 영 불편하다. 틈만 나면 시원한 에어컨, 싱싱한 냉장고 생각이 간절한 요즘의 여름날은 잊을 수없는 시절이 불현듯 그립기만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도 없었고 다람쥐 쫓던 기억도 없지만 일 년 내내 풍성한 들판과 지천에 늘어진 들꽃이 어우러져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봄이 시작될 무렵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싹 터 자라는 봄을 거쳐 한 여름이면 온 들판이 푸르렀다. 남새밭 채소가 싱싱할 무렵 말랭이에서 여름나기를 하며 쉬는 황소 콧등을 간질이고 그 바람이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것으로 알던 때가 있었다. 밭둑에 심은 단수수대는 껍질을 벗겨 단물을 빨아 먹고 껍질은 역어서 여러 가지 모형을 만들었다. 원두막의 수박, 참외가 뙤약볕에 주렁주렁 제 맛대로 익어 갈 때 건너 마을 복숭아밭에서 소쿠리로 한 관 어치를 사오면 온 식구가 푸짐하고 넉넉하였다. 학교를 마치면 나는 소먹이는 일이 숙제보다 더 중요했다. 아버지와 평생을 같이하며 가족의 생계를 맡은 소를 위하는 것은 어쩜 당연하였을 것이다. 해가 어둑할 때까지 논둑길에서 소띠기고 돌아오면 어머니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온가족이 둘러 앉아 먹을 저녁성찬을 준비하시느라 분주하다.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고 동네 국수공장에서 사온 국수에다 맛깔스런 멸치국물 국수는 지금도 입맛에 돌고 있다. 그뿐인가. 각종야채를 넣고 끓인 된장국에 수제비나 손칼국수 물에 된장 풀고 애열무나 어린 배추, 아욱, 시금치 등을 넣고 불린 쌀을 넣어서 끓인 구수한 죽 맛, 된장 찜을 넣고 한 소큼 솎아다 열무김치 만들어 보리밥에 고추장 넣어 큰 양푼에 비벼서 온 식구가 같이 떠먹던 그 맛있던 기억을 어찌 잊을까. 그렇게 저녁을 먹고 바깥마당에 매방석 깔고 앉아서 어머니가 쪄서 내온 옥수수 감자 냄새로 옆집앞집 사람들이 놀러오고 마당 한 켠에 아버지가 피워놓은 모깃불 매운 연기에 눈비비며 비료 푸대로 만든 부채를 벚 삼아 멍석에 누우면 온 하늘이 별천지다. 지금같이 전파 시설이 어려운 때라 세상 복잡한 소식을 들을 기회도 없으니 오직 편안한 여름밤의 꿈은 별아래 속삭이는 꿈나래였다. 비가오나 해가 뜨나 이른 새벽이면 아버지는 등에 삽을 지고 들판으로 향하신다. 지금이야 한때 기계로 모를 심고 한 여름을 펴낳게 쉬었지만 한여름도 손으로 논에서 할 일이 천지였다. 푸릇한 7월의 정겨운 고향들판 향기로운 푸성귀 냄새코를 찌르던 밭둑 길에 한나절 풀 매는 어머니의 등은 홈싹 땀으로 젖고 못난 자식 걱정으로 주름진 이마엔 줄줄 땀이 비되어 내렸다. 뙤약볕 콩밭에 핀 여름 고추며 열무며 콩이며 감자며 등 뒤에 자식 업고 서 있는 어머니 닮은 저 옥수수밭, 이 고랑 저 고랑 푸르게 손 뻗은 혈기 왕성한 고구마 줄기들 기린처럼 서있는 수수대, 산기슭 길가에 울쑥불쑥 서있는 산딸기는 요즘의 복분자였다. 오가며 한주먹 딸기 따 들고 세상을 얻은 듯 그 얼마나 좋아했던지! 600여명이 넘던 학교는 동네마다 아이들 소리가 왁자지껄했고 애향단 등하교가 있었던 그 학교가 방학하면 아이들은 외갓집과 친척집에 놀러 갈일에 마음이 풍선 같다. 이제는 마을도 우리도 늙어버려 형체가 어렴풋할 뿐 지금의 여름날은 어린 시절 그 낭만을 기대할만한 곳이 없다. 그저 나도 늙어지고 아이들은 덜썩 커버린 이 시점에 뜨거운 여름을 피해 휴가를 떠나면 그만일 뿐이다. 여행길에도 콘도나 펜션보다 시골 민박을 좋아한다. 오늘도 국악공연차 전남 진도를 향해 내달리는 창가의 들녘은 가을을 학수고대하는 곡식들이 아우성이다. 무구했던 유년시절과 그 동무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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