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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봉 익산 귀금속 제조업 발전협의회장·(주)현담주얼리 대표이사
익산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보석의 도시가 되었으며 그 역할과 의미는 무엇 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 1975년에 정부에서 보석 가공 산업을 수출 특화 사업으로 육성하기로 확정하면서 익산이 보석 산업의 중심지로 태동하게 됐다. 당시 현재의 귀금속1단지를, 4년 후인 1979년에 2단지 조성, 보세구역으로 지정해 원자재를 수입 가공 후 수출함으로서 외화 획득에 기여 했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적 특성으로 고용이 증대됨으로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게 된다. 과거 익산의 보석 산업은 년 간 수출액이 1억불에 달할 정도였고 종사자도 7천여 명 이상으로 큰 호황기를 맞기도 했다. 초기 생산 품목은 일반적으로 큐빅으로 알려져 있는 cubic zircornia로 다이아몬드의 대용품으로 사용되는 보석으로서 미국 시장 점유율이 80%이상 이었는데 이는 익산 공단에서 제품 품질향상에 결정적인 표면 처리기술이 개발되었고 한국인의 정교한 손기술이 결합돼 우수한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값 또한 지금보다 10배 이상 높은 금액으로 수출거래가 이뤄졌다. 이후 인건비 상승과 주변국의 추격으로 익산 보석 산업은 세공(주얼리 가공)분야로 전환됐으며 금은 세공완제품을 세계30여 개국에 수출함으로서 1990년대 후반에는 공단이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익산 보석 산업의 대표적인 세공 제품은 흔히 테니스 팔찌라 불리는 품목으로 이 제품은 현재도 익산이 그 가공기술면에서 세계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또 한국 세공 기술의 우수성과 여건에 맞는 다품종 고품질 주얼리 틈새시장을 발굴 수출함으로서 가득 율을 높이고 한국 보석 산업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익산의 보석 산업이 현재 침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익산은 그동안 축적해온 많은 산업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언제든지 세계적인 보석 산업의 중심지로 일거에 도약 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다. 산업적 생산설비가 마련되어있고 대한민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필리핀 등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보석 가공 기능인들을 배출한 근거지로서 축척된 기술적노하우가 익산 보석 산업의 울타리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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