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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환 익산교육지원청 교육장
오스카 쉰들러는 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막으려고 했던 실화 속의 인물이다. 인간과 인류에 대한 그의 치열한 삶은 1994년에 개봉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 영화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는 독일의 나치 당원이고 사업가였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희생되는 유대인의 참상을 보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릇 공장을 운영할 때는 유대인을 고용하여 그들을 지키고자 했고 군수품 공장을 하면서는 적당한 태업을 통하여 무의미한 전쟁에 항의하는 뜻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유대인에 대한 핍박은 더욱 심해진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는 독가스에 의한 유대인 집단학살이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사료에 의하면 유대인 600백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하지 않은가. 쉰들러는 폴란드에 있는 자신의 공장을 체코로 이주하라는 명을 받는다. 공장이 체코로 이주하게 되면 폴란드 유대인들은 예외 없이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로 가야하고, 결국에는 독가스에 질식되어 집단 학살을 당해야 할 운명에 처한다. 이에 쉰들러는 포로수용소 소장에게 엄청나게 많은 뇌물을 주고 1천100명을 사들여 체코로 데리고 감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구한다. 마침내 독일이 항복하자 나치 당원이었던 쉰들러도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쉰들러와 작별을 아쉬워하며, 금이빨을 뽑아서 석별의 징표로 반지를 만들어 주었다. 그 반지에는 다음과 같은 탈무드의 지혜가 새겨져 있었다.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단지 그 당사자 한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에 그렇다. 또한 이 말에는 ‘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세상 또한 구할 수 없다’는 경고로 다가온다. 얼마 전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던 수원의 ‘묻지마 살인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그 범죄자의 집안에서 뼛조각이 발견되고 인육을 먹었다는 등의 끔찍한 뉴스를 보면서 온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이 사건은 우리가 미처 해 내지 못한 ‘한 사람 구하는 일’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그를 길러냈더라면 그처럼 흉악한 범죄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년 여름 극장가를 달궜던 영화 ‘도가니’도 떠오른다. 장애우들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지 않은 채 돈벌이에 급급하고, 권위를 행사하는 자리라는 잘못된 사고에 빠진 한 사람의 부도덕과 탈선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절망하게 하였는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재대국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우수한 한 사람의 인재를 길러내는 것으로 교육의 역할, 사회적 역할을 다했다고 자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인재 한 사람이 사회, 경제적으로 이 사회를 변화시킨 공로를 폄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소외된 사람, 한 사람의 부정적인 사람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불행과 대가 또한 엄청나게 크기에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함께 동화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사람, 가난의 고통과 무관심 속에서 버려진 사람이 없는지 마음을 모아 찾아내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물질적 결핍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최근 종교단체를 비롯한 사회단체, 그리고 공공기관 등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그들과 함께 하면서 정서와 공감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반지에 새겨준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과 같다”는 말은 오스카 쉰들러에게는 위대한 사랑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숭고한 사랑을 높이 칭찬하는 말이지만, 필자에게는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을 돌려주라는 따끔한 충고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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