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6-10-08 오후 05:36:06 전체기사보기 원격
전체기사
커뮤니티
 
뉴스 > 기획/특집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익산최초교회, 남전교회 116년 역사&현재Ⅰ
초가삼간서 싹튼 신앙…기독교 민족혼 발원지

1897년 ‘남차문교회’ 탄생…성도 7명 이윤국 집 모여 예배

전킨 선교사 남전리 사는 김정현·이성일 씨 부인 최초 세례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2년 05월 30일(수) 14:35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네 번째 남전교회.

네 번째 남전교회.

 글 싣는 순서
1. 남전교회 태동
2. 남전교회 116년의 역사
3. 3.1운동 진원지 남전교회
4. 남전교회 현재와 미래

1897년 세워져 올해로 116년을 맞는 익산 오산면 남전교회. 익산 최초의 교회이자 익산지역 3·1운동 발원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남전교회는 기독교 민족혼 발원 유적지로 성역화 추진을 앞두고 있다. 익산지역에 기독교 문화를 전파시키고, 민족수난기 일제 항거해 3.1 운동과 4.4독립만세를 주도해 민족혼을 일깨우는 발원지라는 데에서 근거를 찾고 있다. 익산신문은 4차례에 걸쳐 남전교회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아봤다. <편집자주>

“하나님께 감사함은 죄 많은 곳에 은혜가 풍성하다 하신 말씀 같이, 미국 선교사 전위렴 씨를 이 반도에 파송하심으로 해 씨가 군산항에 내도하야 위치를 정하고, 이 지경으로 선교 구역을 삼아 순회 선교하는 동시에, 처음으로 7인이 생명의 복된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닫고 믿었으나 예배하는 처소가 없어, 오십리 상거 군산으로 5∼6삭간 다니며 예배를 보는데 점점 신앙상 힘을 얻어 개인 전도가 없지 않는 고로, 믿는 사람이 차차 많아져 삼 십 여인이 되었고 1899년에 이르러 선교사 전위렴 씨가 춘기 입교식을 거행하려고 자기 사랑에서 조사 주원선 씨와 같이 기도로 개회하고 세례인을 시취할 때 비로서 제1회로 입교인이 2인이요. 회장이 폐회하다.”(기해년 3월15일 익산 남전교회 1회 당회록)

 

최초의 선교사였던 전위렴 선교사의 집. 전도하며 예배를 드리던 곳.

최초의 선교사였던 전위렴 선교사의 집. 전도하며 예배를 드리던 곳.

1892년 미국의 남장로교회 외지선교부에 의해 전라도 지역의 선교가 시작됐다. 남장로교회의 파송을 받고 입국한 ‘7인의 선발대’는 서울에서 우리말을 익히고 1894년부터 전라도 지역 선교를 시작했다.

예향협정(Commity Agreements)을 통해 미국 남장로교회는 선교사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일부를 선교구역으로 할당받은 것.

 

전위렴(1897.10.15~1903)

전위렴(1897.10.15~1903)

남전지역에 복음이 들어온 것은 전킨 선교사(W.M.Junkin, 한국명 전위렴)가 군산을 거점으로 선교활동을 할 때였다. 1896년 10월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부의 연례회의 당시 군산보다 전도하기 더 좋은 지역에 선교부를 개설하기로 결의했으나 전킨 선교사와 의사인 드루 선교사(A.D.Drew)가 군산 선교를 시험적으로 1년간 더 해본 뒤 그 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고 선교부를 설득했다.

이 주장이 선교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자 드루 선교사는 배 한 척을 구입해 금강과 만경강을 오르내리면서 충청도와 전라도 북서부의 환자를 진료했고, 전킨 선교사는 부지런히 복음의 씨를 뿌렸다.

마침내 두 선교사의 열정이 결실을 맺게 됐다. 1897년 5월 등록교인이 40명을 넘어서게 됐는데 그 중 7명이 오산면 남전리 사람이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남전리를 발음하기 어려워 ‘Nam Cha Mun’이라 부르고 표기했다. 50리나 떨어진 군산의 전킨 선교사 집까지 예배드리러 다니던 남전리 성도 7명이 이윤국의 집에 모여 예배드리게 되면서 남차문교회가 탄생했다.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남전교회의 시작이었다.
1899년 3월 15일 전킨 선교사는 김정현(金正賢)과 이성일 씨 부인(李成逸 宅)에게 세례를 준다. 익산지역 최초의 세례자다.

그 해 가을에는 이성일·이윤국·김국서의 부인 등 12명이 세례를 받았다. 교회를 시작한 지 1년 사이 교인 수도 20여 명으로 늘었다.

 

전위렴 선교사 가족.

전위렴 선교사 가족.

1899년 5월 군산항이 열리면서 일본인들이 많이 들어오자 전킨 선교사는 선교기지를 궁말(구암)로 이전했다. 익산의 성도들 역시 전킨 선교사를 따라갔다. 먼 곳의 교회를 다니면서도 익산의 성도들은 열심히 전도했다. 성도 수가 30여명으로 늘어났다. 궁말의 교회 역시 각지에서 모여드는 성도들로 비좁아졌다. 교회를 신축하면서 익산의 성도들은 인근 송지동으로 예배를 드리러 다녔다. 그 기간이 5∼6개월.

1901년 성도들이 헌금을 드리고 남참리 김여원의 초가 5칸을 70원에 사들여 예배를 드렸다. 이듬해에는 성도가 100여명으로 늘었고 1907년에는 장로와 서리집사를 세웠다. 1915년 12칸짜리 양철 지붕의 예배당을 마련했다.

남전교회는 교회록과 야소교 장로교 연감 기록을 근거로 1897년 10월 15일을 남전교회 창립일로 기념한다.

남전교회는 1910년 4월 1일 오산면 신덕리에 학교를 설립하고 이름을 도남학교(道南學校)로 지었다. 여학교를 따로 설립해 ‘미성학교(美聖學校)’라 부르기도 했으나 남녀공학인 ‘신성학교(新聖學校)’로 교명을 바꾸어 1942년까지 32년 동안 오산면 일대 민족교육의 요람이 됐다.

신성학교는 뒤에 일본 총독부의 강제적인 교육통제 정책으로 폐교되고, 지금의 공립학교인 오산남초등학교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일제의 횡포와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많은 기록을 잃어버렸지만 남전교회는 최초의 당회록과 교회록을 보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교회 중 하나다. 최초 개종자 7인의 이름과 신앙공동체 당시의 기록은 없지만 교회로 발전한 후의 기초적인 자료들은 모두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권찬 기자

전킨(전위렴)선교사.

전킨(전위렴)선교사.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 Copyrights ⓒ익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익산 원도심, 문화산업으로 다시 뛴..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익산 인재 ..
"NS푸드페스타 어디서 열릴까?"…익..
익산시, 미륵사지휴게소 '로컬푸드 ..
한국여성유권자 전북연맹, 익산 한..
신흥, 익산 아동 과자 선물꾸러미 3..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인에 휴식과..
최정호 시장 "전임 시장 행적 지우..
익산영신교회, 모현동 청소년 위해 ..
생산량 860% 향상…익산시, '스마트..
최신뉴스
식품진흥원, 왕궁면민의날 행사에 ..  
이웃에 따뜻한 한끼, 마동 '사랑의..  
평화동에 이어진 나눔…이웃돌봄부..  
남중동 주민자치위원회, 연탄 500..  
원광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2..  
월 15만원 장학재단 기숙사, 저소..  
익산소방서, ‘골든타임’ 비응급..  
익산 공공기관, 울타리 넘어 ‘청..  
정원상 시의원, 시민 다친 파손 인..  
익산여성단체협의회 전통장류 담그..  
㈜원진알미늄, 취약계층에 라면 50..  
‘북딜리버리’ 운영 개선 취지는 ..  
익산산립조합 봉사단, 다이로움 배..  
울트라마라톤 모은 310만원, 시각..  
아이빛유치원, 작은 손길 모아 따..  
인사말 연혁 편집규약 윤리실천요강 광고판매윤리강령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익산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3-81-34955/ 주소: 전북 익산시 인북로 190-1(남중동) / 발행인.편집인: 박종규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규
mail: ikpress@naver.com / Tel: 063-841-1221 / Fax : 063-856-2625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북 다011187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