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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상 원광대 문예창작과 강사
한 밤의 어둠을 달랠 수 있는 것은 한 잔의 술도 친구도 아닌 해가 뜨기 전의 불그스레한 주변과 그것을 한없이 밝혀주는 달빛이다. 아주 큰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할머니의 옛이야기 속에 우리는 가벼운 웃음을 짓기도 하지만 나날이 달라지는 얼굴 뒤에는 집 나간 강아지마저 그리워하게 하는 바이러스 같기도 하다.
낙엽(落葉)이 발이 숨는 못물가에 우뚝우뚝한 나무그림자 물빛조차 어슴프러이 떠오르는데, 나 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東)녘 하늘은 어두운가. 천인(天人)에도 사랑눈물, 구름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님이여,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불그스레 물질러 와라 하늘 밟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半)달은 중천(中天)에 지새일때. -김소월의 '새벽'중에서-
술 한 잔의 즐거움으로 이 시(詩)를 읽고 있으면 괜히 팔자타령이나 하고픈 생각이 든다. ‘나의 님이여, 그러나 그러나’ 외로워서 애달프게 불려보지만 끝내 남은 것은 달과 그 그림자뿐이다. 이 시의 화자는 낙엽이 발밑에 하나씩 떨어지는 큰 나무가 있는 물가에 서 있다. 다른 나무보다 뛰어나게 크고 유별나게 강해 보이는 나무와 아무런 힘이 없어 자신에게 나는 광채조차 약해야만 하는 물빛은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달콤한 언어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리하여 동녘의 하늘에 해가 뜨기 전에 이들 둘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설레는 사랑을 한다. 이처럼 강한 나무와 물빛의 사랑을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화자는 자연스레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자인 '나'는 혼자이다. 혼자인 '나'는 님(天人)도 나처럼 혼자라서 외로움과 사랑하는 님을 애타게 찾는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가 둘이 되기 위해 '나'는 님을 기다린다. 현실의 '나'는 님이 있는 환상의 세계로 갈 수 없다. '나'와 님이 만나기 위해서는 님이 나에게로 오는 수밖에 없다. 이 시의 화자는 그런 비극적인 상황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걸까? 화자는 밤을 지새우면서 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김소월의 ‘새벽’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화자의 외로움을 감추기 보다는 아예 노골적인 외로움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외로움조차도 큰 나무와 물빛의 사랑으로 대리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가능한 것은 새벽이 주는 색다른 색깔이 아닐까 싶다. 옆에 있는 물건조차 찾기 힘든 밤보다는 어슴푸레한 윤곽선의 흔적만이 남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를 비치는 달과 별의 조명의 효과는 쉽게 유혹에 빠지게 하는 매력을 뽐내고 있다. 새벽이라는 공간은 새벽만이 가지고 있는 여명과 몽상을 만들어 내기에 제법 잘 어울리는 주위 환경에 대한, 그리고 밝음으로 인해 잊어 버렸던 기억을 되살려주기도 한다. 또한 공포의 대상인 악마와 귀신의 활동이 왕성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때가 바로 새벽이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저주나 공포 이야기의 전개 시점이 새벽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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