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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맛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2년 05월 14일(월)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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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숙 세림약국 약사

소현숙 세림약국 약사

텃밭에서 달래와 냉이를 캤다. 뿌리가 깊어 조심스럽게 호미질을 해서 캐내었다. 뿌리에 붙어있는 흙을 털어내고 물에 담가두었다가 맑은 물이 날 때 까지 여러 번 헹구어 바구니에 담았다. 이파리보다 더욱 긴 뿌리를 보며 상념에 잠겨본다.

봄의 전령으로
피어나기위하여
엄동설한에도
따뜻한 기운 잃지 않고
뿌리에 영양을 저장하여
땅속 깊이 뻗어나갔겠지.
 
튼실하고 긴
두레박줄이 되어
깊은 땅속의
봄소식을 길어 올렸겠지.  
 
냉이의 튼실하고 긴 뿌리를 보면서 뿌리 깊은 삶의 유전, 삶의 뿌리의 깊이와 대비(對比)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재에 꽂혀 있는 족보를 꺼내어 펼쳤다. 나의 뿌리의 깊이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조부와 조모의 장자였다. 조모는 동래 정씨의 부와 진주 강씨의 모의 뿌리에서 피어난 새싹이었다. 어머니는 여산 송씨의 부와 경주 최씨의 모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뿌리는 진주에 본을 두지만 최소한 동래 정씨, 진주 강씨, 여산 송씨, 경주 최씨까지 뻗어 있다. 고고성을 울린 곳은 익산의 평야지역인데 저 멀리 부산 동래포구, 진주 남강, 경주 토함산, 가까이는 여산의 봉우리의 정기가 서린 뿌리이다.
더 윗대로 올라가 추적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한반도 방방곡곡의 정기가 서리고 얽힌 뿌리일 것이다. 나아가 인류의 시조가 태생되던 지구촌의 어느 산맥아래에서 발아된 종자의 뿌리이겠지.
들녘에서 눈과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냉이도 단순한 뿌리가 아닐 것이다. 시베리아 기단이 만든 눈이 대지에 내려 녹은 물을 머금었을 것이며 북태평양 기단이 몰고 와서 만든 빗물도 머금고 뿌리를 길러 나갔을 것이다. 지구와 우주의 정기가 씨앗을 발아시키고 뿌리를 키우고 새싹을 돋게 했을 것이다.
멸치국물을 우리고 깨끗하게 씻은 냉이와 김장김치를 잘게 다져넣고 된장을 한 숟갈 풀어 냉이 토장국을 끓였다. 국자로 국물을 떠서 후후 불어가며 냉잇국의 간을 본다. 감칠맛이 돈다. 냉이 뿌리도 건져내어 깨물어 본다. 뿌리에서 단맛이 배어나온다. 한방에서는 뿌리가 달린 이 냉이의 전초(全草)를 제채(薺菜)라 하여 비(脾)를 조화시키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지혈(止血)하고 시력을 좋게 하는 효능이 있는 약재로 사용한다.
국물에는 땅위에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납작 엎드린 냉이의 보랏빛 겨울 이파리위로 포근하게 눈이 내리던 밤하늘 위의 달빛과 별빛이 녹아있다. 겨울을 나던 냉이 뿌리에서 녹은 치열한 맛이 폐부로 스며들며, 이파리에 별빛과 달빛이 서린 꿈도 미뢰(味賚)에 녹아든다. 한 모금 더 간을 보니 겨울을 나기 전 냉이꽃잎위에 내렸던 여름과 가을비의 구름의 여행기도 감칠맛으로 온 몸에 퍼진다.
국그릇에 떠놓은 냉잇국이 마시기에 적당히 식었다. 국물을 훌훌 마신다. 온 몸의 혈맥에 흡수되면서 폭우와 태풍을 이겨냈던 삶의 노래가 들려온다. 온상에서 고이 자란 채소의 소곤소곤 들려오는 실내악이 아니고 모진 풍상을 견뎌 낸 튼실한 뿌리의 깊은 울림이 있는 교향악이 들려온다.
커튼을 활짝 열고 봄 햇살을 받아들인다. 봄 햇살이 방안으로 흘러든다. 눈부신 듯 봄 햇살을 난반사하는 책장의 유리창을 열어 가족의 뿌리가 기록된 족보를 다시금 눈여겨보면서 그 곳에 노거수(老巨樹)의 뿌리로 계시는 분들에게 가정의 달 오월의 교향악을 들려드린다.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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