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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전 남성여중 교장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은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바람이 품안으로 들어와 옷깃을 여미게 한다. 봄은 일년 24절기 중의 하나인 곡우(穀雨)를 전 후로 하여, 그 앞을 이른 봄 그 뒤를 보통 봄, 또는 늦은 봄이라 한다. 유년시절을 산촌에서 살아왔던 사람이면 이른 봄 뒷산에 올라 잎새 보다 먼저 연한 분홍색으로 피어나는 진달래꽃을 만났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달래꽃은 우리의 산과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의 꽃이요 민족의 애환을 노래한 꼬치다. 또한 선인(先人)들의 생활문화와 풍속이 진달래꽃과 함께 이어져 온 것도 많다. 예부터 음력으로 삼월삼일 날을 삼짇날이라 하여 제비가 돌아온다 하였고 춥고도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화창한 봄날 진달래꽃이 피면 꽃잎을 따서 찹쌀가루에 섞어 기름에 튀겨서 간식으로 하였다. 이 진달래 꽃잎으로 빚어서 만든 술(酒)를 두견주라 하였으며 산과 들로 이웃과 함께 꽃구경 가는 날 노래와 춤을 추며 하루를 즐겼던 들놀이를 화전놀이라 하였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고향의 봄 노래 말 속에서 ‘아기 진댈래’가 들어 있고, 김소월의 시에도 ‘약산 진달래꽃’이 나와 노래를 부를 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을 잔잔히 젖어 주고 있다. 필자가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 봄이 되면 부대 주변 산기슭에 피어오르는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고향 생각에 젖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부대 행군이 있는 날이면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진달래꽃이 이상하게도 산기슭 북쪽 능선을 따라 피어 있었다. 제대 후 취미로 했던 산행을 통해 주의 깊게 살펴본 진달래꽃은 해안 쪽보다 내륙에 피어 있었고 내륙에서도 북쪽을 향한 언덕 다습한 토양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도내에서도 진안의 운장산과 모악산의 진달래도 모두 북쪽 능선에 피어있고, 가깝게는 익산의 미륵산도 금마면 산북리를 향한 산비탈에서 진달래꽃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는 날씨 변화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나 매년 3월말에서부터 피기 시작해 4월 말까지 전국의 산과들을 수놓는다. 많은 자생식물 가운데 진달래꽃은 우리 향토 식물상을 진하게 나타내는 꽃이다. 이러한 진달래꽃이 어찌된 일인지 근래에 접어들어 뒷동산은 물론 산야에서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 아쉽다. 우리가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것은 고향에 있는 혈육의 정만이 있어서가 아니다. 거기에는 산과 들, 냇가가 있고 뒷동산에 오르면 그 곳에서 자라고 있는 동?식물의 생태계가 조화를 이루고, 특히 식물의 경우 군락이 안정된 식물상을 이루어 가고 있을 때 고향은 시정이 깃든 동산이 되기도 한다. 올 봄에도 진해 벚꽃 군항제 소식이 전해져 오고 있다. 한 때는 전군도로도 벚꽃이 만개 할 때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 그러나 왠지 진달래꽃이 피어나 북상한다는 소식이 없어 아쉽다. 향토색 짙은 진달래꽃을 번식 시켜는 것은 물론 선인들이 즐겼던 화전놀이를 한 지역의 문화행사로 발전시켜 나갈 수는 없을 까. 우리 향토의 꽃 진달래가 산과 들에 가득하게 피어나는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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