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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7일 중앙동 사임당 예식장 특실. 건장한 체격의 대학생과 단정한 교복을 입은 중고생 49명이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하나 둘 의자에서 일어나 보무도 당당히 단상 쪽으로 걸어 나왔다. 하나같이 선남선녀인 이들은 다름 아닌 재단법인 전북의 등불 장학생들.
마냥 흐뭇한 듯 정봉교 회장(70)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정 회장은 이날 장학금 전달식 축사에서 “회원들의 뜻을 모아 벌써 22년째 뜻 깊은 장학금을 전달하게 됐다”며 “우리 자랑 스런 장학생들도 장차 차세대 새 일꾼을 돕는데 앞장 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북의 등불 140여명의 회원들과 내빈, 그리고 가족들은 뜨거운 박수로 정 회장과 학생들을 격려했다. 이어 장학증서가 수여되고 학생들은 축하의 꽃다발 세례를 받았다. 이날 전달된 장학금은 1천300만원. 정 회장을 비롯해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이다. 이렇게 해서 조성된 장학기금은 2004년 2억 원을 돌파했다.
장학기금은 매년 연말 불우한 환경 속에서 학업에 열중하는 모범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23년간 거액의 장학기금 쾌척
우리나라엔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앞장서는 사회 지도층 인사가 많지 않다고 아쉬워한다. 하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우리나라 아니 익산에도 수 십 년간 묵묵히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한 기업인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북의 등불 정봉교 회장이다.
정 회장은 1989년 전북의 등불 초대회장을 역임한 이래 해마다 수 천 만원의 기금을 출연해왔다. 1990년 4천만 원을 선뜻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기금 조성 릴레이는 23년 간 멈출 줄 모른다.
정 회장은 “전북의 등불 창립 취지가 한없는 사랑, 뜨거운 봉사, 행복한 사회”라며 “회원들과 함께 23년간 경로효친사업, 장학사업, 불우이웃돕기 등 수많은 봉사활동을 펼쳐왔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고 미흡한 마음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정 회장은 9회말 투아웃 스릴 넘치는 역전극이 야구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빈부 간 인생역전은 흔히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회장은 지금도 남을 돕고 집에 들어가면 행복감에 젖어 잠자리가 편하다. 하지만 좀 기분 나쁜 일을 겪고 귀가하면 밤새 잠을 뒤척이고 몸과 마음이 무겁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루에 한 가지라도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정 회장의 이런 철학은 1990년부터 실천됐다. 그해 개인 사재 2천만 원을 털어 전북의 등불 첫 기금을 조성했다. 이어 어르신 1천500명을 초청 경노잔치를 열었다. 전북의 등불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경노대잔치는 2001년까지 무려 12년간이나 지속됐다.
전북의 등불 6주년을 맞은 1995년엔 재단법인 꿈나무 장학회를 설립해 21명의 학생들에게 2천만 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꿈나무 장학회는 2003년 사단법인 전북의 등불과 통합돼 재단법인 전북의 등불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북의 등불은 그 후 매년 50여 명의 모범생들에게 1천만 원이 훌쩍 넘는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주변에서는 정 회장이 생활 형편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못하는 학생들도 배울 기회는 가져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 때문에 장학 사업에 더욱 열의를 갖게 됐다고 짐작한다.
회원 142명 중 임원 조직도
#나라가 알아준 선행…대통령표창만 두 차례
1989년 강현욱 도지사가 16개 시·군에 창립한 ‘전북의 등불’은 현재 익산시만 남았다. 2년 만에 모두 흐지부지 문을 닫아버렸다. 당시 이리회 초대회장이었던 정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회원들은 정 회장이 없었다면 익산도 아마 벌써 해체됐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이다.
사회 각계 지도층이 모인 봉사단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친화력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선봉에 나선 게 정 회장이다.
정 회장의 이러한 봉사정신은 수많은 표창이 말해준다. 1988년 대통령 표창을 받은데 이어 1990년 이리시민의 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내리 내무부장관·법무부장관·문화체육부장관 표창·국민포장·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정 회장은 이 가운데 1995년 수상한 제1회 자랑스런 전북인 대상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지금도 사무실 정중앙에 상패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 같은 영광이 있기까지엔 묵묵히 따라준 140여 회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모든 공을 친형제·친남매 같은 회원들에게 돌렸다.
창립 멤버인 오세웅·김응길 자문위원을 비롯해 윤여웅 부회장, 김광희 사무총장, 고석동·고완진·이완수 회원, 엄세양 분과위원장 등 8명은 ‘23 성상’을 동고동락한 고마운 형제들이다.
#모든 걸 털고 건강관리에 열심
정 회장은 365일 산에 오른다. 눈이오나 비가 오나 이른 새벽이면 집 근처 배산에 올라 하루를 계획한다. 등산을 마친 후 배산 숲에서 라디오로 듣는 뉴스는 꿀맛 그 자체다.
아침 운동을 마치면 바로 전북의 등불 사무실로 가 이런 저런 업무를 처리한다. 정 회장의 부지런함은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이어졌다. 칠순의 나이지만 도내 굴지의 건설회사인 (주)제일종합건설 회장과 익산시 기관장 모임인 이화회 사무총장, 전주지검 군산지청 범죄예방 익산협의회장 등 직책만 4개다.
정 회장은 명예나 권력은 오래가면 바래지지만 상대를 마음 아프게 한 것은 평생 잊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남에게 큰 충격이나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삼가야 사회에서 인정 받는 지름길이라는 것. 정 회장이 항상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봉교 회장이 걸어온 길
-1943년 익산 출생
-전북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주)제일종합건설 회장(현)
-익산시 이화회 사무총장(현)
-전주지검 군산지청 범죄예방 익산협의회장(현)
-1988년 대통령 표창(경노효친부문)
-1990년 이리시민의 장 공익장 수상
-1992년 내무부장관 표창
-1992년 대통령 표창(민생치안부문)
-1992년 법무부장관 표창
-1995년 제1회 자랑스런 전북인 대상(공익장)
-1995년 문화체육부장관 표창
-1996년 교육부장관 표창
-1997년 국민포장 수상(복지부 경노효친부문)
-2001년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검찰청 청소년 선도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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