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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의 역사'조석인 익산시체육회고문
새해특집 원로에게 듣는다
"체육인이 화합해야 익산시민 모두 건강하고 행복"
남을 존중하고 협동하고 원칙 지키는 것이 '페어플레이 정신'
시민 건강과 삶의 질 향상 위해 각종 체육시설 적극 활용해야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12년 01월 18일(수)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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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복싱계의 대부’ 조석인 씨(76). 그의 이름 석 자는 ‘한국 체육계의 살아있는 역사’를 말한다.

전주고등학교 2학년 때(3학년 때 남성고로 전학) 친구를 따라 처음 체육관에 가 재미 삼아 시작한 복싱은 그대로 숙명이 됐다.

전북대학교 2학년 때 군에 입대해 제대하는 날까지 육군대표 선수로 뛰었다. 그리고 제대 후 1960년 9월 ‘이리체육관’의 문을 열었다.

그의 나이 스물네 살. 체육관은 그 이듬해부터 대표 선수가 나와 이후 50여 년 동안 30여명의 국가대표선수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복싱 사상 최초로 금메달 쾌거를 이뤘던 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준섭을 3년간 가르친 게 바로 그다.

이밖에 70년대의 간판스타인 유종만과 조영철, 이거성, 고요다, 송학성, 전진철, 박덕규, 강월성 등이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애제자들이다.

그는 체육행정가로 대한민국 체육계를 호령한 자랑스러운 '전북인'이다. 1972년 한·일 복싱대항전 국가대표팀 코치로 시작해 1975년 이후 각종 국제대회는 물론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서울올림픽 등에서 국제심판으로 활동했다.

전라북도체육회 사무국장(7년), 대한복싱연맹 부회장, 전라북도체육회 부회장(10년), 대한체육회 이사(14년), 전라북도 생활체육협의회장, 대한복싱연맹 전무이사·부회장, 한국대학복싱연맹 회장, 상임고문, 97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원, 원광대학교 체육부 상임감독 등 그가 한국체육계에 쌓은 이력이다.

익산시청 별관 뒤에 자리한 이리체육관은 지금도 챔프를 꿈꾸는 선수들로 북적인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직접 체육관에 나와 선수들과 운동을 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을 만큼 복싱에 대한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꾸준한 운동덕분에 아직도 청년 같은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조석인 씨를 18일 오후 이리체육관에서 만나 익산체육 발전에 대한 고견을 들어봤다.

-요즘 근황은.

대한복싱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어 일주일에 한번쯤 서울에 올라가 방향을 잡아주곤 한다. 나머지 시간은 한국체육인회일로 대부분 소일한다. 한국체육인회 전라북도회장으로서 포럼을 개최하고 걷기대회 등을 개최하는 등 체육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올 4월 익산시민걷기대회를 준비 중에 있다.

또 가끔 익산시체육회에 나가 후배들에게 조언도 해주고 있다. 지금도 명함이 많이 있지만 '익산시체육회 고문' 명함을 제일 많이 내민다. 그만큼 익산시체육회에 애정이 많다는 의미다.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체육관에 나가 아이들 가르치고 함께 운동하고 호흡한다.

-나이를 잊은 것 같다. 젊음의 비결은.

태어나서 하루도 누워있어 본 적이 없다. 치아도 건강하다. 무엇보다 건강은 타고 났다. 평생 교육계에서 헌신한 돌아가신 아버지(조우섭 씨)에게 물려받은 받은 것 같다.

건강관리도 중요하다. 매일 아침 정원에 나가 체조로 하루를 시작한다. 또 역기와 정원 청소를 1시간 정도 하하고 나면 온 몸에 땀이 흐를 정도로 상쾌하다.

오후엔 체육관에 나가 기구 좀 들고 샌드백도 치고, 아이들을 지도해준다.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초중학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젊어진다.

 

 

 

-남원에서 태어날 걸로 알고 있는데 익산과 인연은.

원래 고향은 남원이다. 초등학교 3년 때 익산으로 이사했다. 그 후 한 번도 익산을 떠나본 적이 없다. 전북도체육회 사무국장과 부회장, 국가대표 감독,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복싱연맹 전무이사, 한국대학복싱연맹 회장 등 숱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항상 적은 익산에 두고 활동했다. 때문에 서울에 가면 '익산 촌놈'이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르곤 했다.

-이리체육관 52년째 운영하고 있다. 복싱 입문 동기는.

졸업은 남성고에서 했지만 전주고등학교를 2학년까지 다녔다. 기계체조 등 운동을 많이 했는데 친구를 따라 복싱체육관을 갔다가 좋은 선배를 만나서 고교시절에 입문하게 됐다. 고교 졸업 후 선배와 함께 체육관을 차렸다.

전북대 2학년 때 군대를 갔다가 제대했는데 체육관이 문을 닫았다. 돈이 안 되니 접은 것이다. 그래서 1960년 9월 창인동에 '복싱구락부'를 만들었다. 중앙동, 남중동 등 4번 옮겨 다니다가 1990년 9월 현재의 자리에 현대식 체육관을 지었다.

 

 

-당시 복싱은 황금기였는데 지금은 어떤가.

그 전보다 못하지만 대회 참가하는 것 보면 많다. 아직도 복싱 마니아층이 두텁다. 물론 엘리트 선수들도 있지만 건강을 위해 하는 친구들도 많이 늘어났다.

-대한민국 체육계에 큰 획을 그었다.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전라북도체육회 사무국장할 때 제12회 전국소년체전에서 2위를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전북이 준우승을 차지했다면 믿지를 않는다. 아마 열악한 전북 체육 환경으로선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이다. 당시 6위 밖으로 밀려나면 사표를 쓸 각오로 덤볐다. 시상대도 오르고 참 멋지게 했다.

다음은 당시 실업팀을 많이 창단해 전북체육의 근간을 튼튼히 했다. 당시 창간한 팀들이 지금도 전북체육의 산실로 자리 잡고 있어 흐뭇하다.

지도자로선 LA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신준섭을 키운 것이다. 원광대 감독 시절 3명 뽑는데 랭킹 4위인 신준섭의 장래성을 보고 뽑아 올림픽 챔프로 만들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점은.

가장 아끼고 정성을 들였던 유종만이다. 한국 최초로 고등학교 때 뮌헨 올림픽에서 4위를 한 실력파다. 당시 고교생이 올림픽에 나간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전국체전 전북대표로 출전시켜 부상당하는 바람에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실패했다. 당시로선 애향심이 컸기 때문에 섭섭함이 덜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장 가슴이 아프다.

한번 놀란 것도 있다. 방콕 아시안게임 때 북한선수인 몬트리올 올리픽 금메달리스트 구영조 선수 부심을 봤다. 국제심판으로 첫 대회인 셈이다. 당시 냉전시대라 살벌할 때다. 극구 고사했지만 하도 권하는 바람에 부심을 보게 됐다. 상대는 필리핀 선수였다. 구영조 선수는 1회전 열세를 딛고 2,3회전 리드를 지켜 3대2로 판정승을 거뒀다.

그런데 시합이 끝나고 체육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주위사람들이 구영조 선수한테 왜 점수를 주어 이기게 끔 했냐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념을 초월해 실력대로 정확히 점수를 줬는데 오해를 한 것이다. 귀국 후 심적 고통을 엄청 겪었다. 다행히 아버지를 비롯해 집안이 애국자 집안이고 사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나 덮어졌다.

 

 

-익산체육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익산시 체육에 대해 한 마디.

20년간 익산시체육회 상임부회장을 역임하고 고문으로 있다. 익산시체육회가 생활체육과 통합되면서 커졌고 예산도 많아졌다. 굳이 냉철하게 얘기를 하자면 화합이 조금 결여됐다고 본다. 그래서 올해 화두를 '익산시체육회 화합의 해'로 삼았으면 좋겠다.

화합을 하려면 여러 가지 것이 따라줘야 하는데 체육이라는 것은 솔직 담백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스포츠맨은 페어플레이 정신이 가장 요구된다. 페어플레이 정신은 남을 존중하고 협동하고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 3가지를 우리 체육인들이 앞장서서 해준다면 익산시민들도 화합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또 한 가지는 익산시에 각종 체육시설이 있는데 체육회에서 잘 활용해서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체육 인프라를 구축하면 의료비도 절감하는 등 시민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도자와 선수 등을 잘 관리해서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자긍심과 긍지를 심어주면 시민화합도 잘 될 것으로 믿는다.

 

 

-그래도 익산시체육회에 쓴 소리를 한다면.

이한수 회장(시장)이 체육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뛰고 있다. 예산도 많이 배려하고 열성도 다른 시장과는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밑에 직원들이 잘 따라주지 못해 여러 가지 파열음이 들리는 것 같다. 직원들이 구태의연한 태도에서 벗어나 새롭고 진취적으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 창의적이고 발전적으로 나가는 모습이 2% 가량 부족하다.

-아까 올해를 익산시체육회 화합의 해로 삼자고 했는데.

체육회가 왜 있냐고 반문하고 싶다. 체육회는 체육인을 위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체육인보다는 정치 쪽을 더 많이 쳐다보고 있다. 체육인을 존중해주고 아껴야 비로소 체육회가 더 빛이 날 것이다. 체육인을 위해 정성을 쏟아야 한다. 체육인끼리 화합하고 한 목소리를 낼 때 힘이 발휘돼 예산도 많이 배정 받을 것이다.

-기억나는 제자는.

수많은 제자를 길렀다. 전북대와 원광대에서 강의도 오래 했다. 한국체대 유종만 교수와 청와대 경호본부장 조용순 씨 등이 생각난다. 조용순 본부장은 학창시절 9년을 데리고 있었는데 명절이면 꼭 찾아온다.

하지만 제자를 양성하며 후회스런 점도 없지 않아 있다. 너무 승패에만 집착했다. 선수로는 잘 키웠지만 따뜻한 정을 나누지 못했다. 승부에만 집착해서 강하게 키우기만 했다. 인간적인 정이 필요하다. 인성교육을 병행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쉽다.

 

 

-앞으로 계획.

가정적으로는 '나쁜 남자'였다. 가정에 소홀히 했고 아픔을 줬다. 집에 쌀이 떨어져도 선수들먼저 챙겼다. 집에서 당장 굶어도 선수들 불고기를 먹이곤 했다.

집에서 살림이 어떻게 되는지 몰랐다. 집 사람(김은주 여사‧68)이 나에게 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제자들 출전비가 없어 당시 동네 한 대 밖에 없었던 TV를 리어카에 싣고 팔러 나갈 때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젠 좋은 시간도 갖고 잘해줄 생각이다. 산행도 하고 외식도 가끔 즐긴다.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인 것 같다. 건강해서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2남 1녀 자식들과 손주 녀석들도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 역시 전국에 있는 제자들도 성공하길 빈다.

또 익산시가 남을 비방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우창수 기자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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