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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현 익산문화원장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무엇을 가장 잘하면서 살았다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느 순간이 가장 보람이 있었고 행복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하는 삶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면서 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아들딸들을 위해서, 지역사회를 위해서, 정치 사회 발전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가정 안에서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 소중한 나는 지금도 목소리가 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얼마 전에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모임을 갖는다고 하여 참석을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가보니 온갖 세상 살아온 이야기가 오간다. 아들 딸 키워 분가시킨 이야기, 돈 번 이야기, 몸이 아파 병원에 가서 치료받은 이야기, 그리고 어느 사람이 가르쳐 준 건강 챙기는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 모임에서도 영락없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정치 이야기이다.
누군가가 정치 이야기는 하지말자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청을 올려 열변을 토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 경험을 가진 이 사람들은 두 진영으로 자연스럽게 편이 갈린다.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편이 갈리어 각기 자기편을 든다. 급기야 보수 진보 진영으로 갈린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이들이 갑자기 투사가 되어 그럴듯한 논리를 전개한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기를 자처했을까? 큰 소리가 몇 차례 오가다보면 상대방의 의견은 아예 묵살하면서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순간적이지만 이러한 시간을 가져본 경험이 우리에게는 누구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할 때 완충역할을 하는 또 한 편이 등장한다. 양쪽 의견을 다 듣고 있었기에 이것저것 따져주면서 타협하는 분위기로 가닥을 잡아간다. 그리고 끝날 때쯤이면 한편 기분이 개운치는 않지만 언제 그랬느냐고 하면서 헤어진다. 다음에 만날 때는 절대로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다. 또 만나면 옥신각신 각자의 주장은 계속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토론문화의 단면이다. 올해는 20년 만에 다가온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는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안 해도 잘 부탁한다는 인사나 전화 문자 메시지를 자주 받는다. 일방적인 정치 인사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일방적이라고 말을 하면 바로 나오는 말이 어느 누구는 ‘보수 꼴통’ 어느 누구는 ‘좌파 빨갱이’라고 단죄해버리는 경우도 있어 듣기에 기분이 좋지 않다. 이 같은 정치문화는 물론 과거에 흔하였다. 이제는 어디까지나 성숙된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의견도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도 들어주면서 목소리를 올릴 필요가 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잘 아는 사이라면 서로 정보 교환만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목소리 큰 사람들과 의견충돌을 보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는 무의식중에 이분법적인 대립과 갈등의 큰 목소리를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꿈을 심어 주어야 하는데 우리 기성세대는 꿈나무들을 의식하지 않고 태연하게 갈등과 대립의 난장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특정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따돌림 시키는 모습과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지금 죽음으로 내몰린 피해학생들을 생각하면 세상에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목소리만 큰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의 깊은 골을 매우지 못한다면 우리사회는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길은 진정 사람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 환경을 만들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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