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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산농협 김혁중 조합장(54)은 요즘 초긴장 상태다. 2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인 '대체작목' 묘목을 농가에 첫 보급했기 때문. 김 조합장은 수도작 농사 대신 '왕대추와 체리‧ 애기사과'를 대체작목으로 들고 나왔다. 벼농사 위주의 농업에서 과감히 탈피해 고소득 작물로 농가 소득을 꾀하기 위함이다. 20여년 외길 농업 인생에 최고의 승부를 띄운 것.
익산에서 블루베리를 최초로 재배한 김 조합장은 날로 고령화‧부녀화 돼가는 농촌의 현실에서 수도작 농사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항상 대체작목을 생각해 온 선구자적 농사꾼. 그러던 차에 12년 전 블루베리를 익산에 처음 고소득 작물로 도입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블루베리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수급 조절마저 어렵게 되자 진퇴양난에 처한 상태다.
김 조합장이 또 다른 대체작목을 찾을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 여기에 있다. 대체작목 발굴에 나선 김 조합장은 수도권 대형 마트와 서울 가락시장들을 돌아다니며 마케팅 조사에 들어갔다. 2년여에 걸쳐 조사한 결과, 김 조합장은 소비자들이 '단맛'을 선호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도가 높은 수입산 과일이 비싼 가격에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었기 때문. 그 가운데 미국산 왕대추와 체리‧애기사과는 가장 뜨는 품목으로 1년 365일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었다.
김 조합장은 서익산농협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대체작목으로 이들 작목을 꼽았다. 결심이 서자 과감히 실천에 옮겼다. 조합원 42명과 미국 선진지 견학을 떠났다. 캘리포니아 지방 농장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공부에 매달렸다. 비닐 팩에 묘목을 담아오다 뺐기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 우연히 한국인 농장주를 만나 어렵사리 묘목을 얻는데 성공했다. 국내로 들여오는 일은 마치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마치 고려 말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붓 뚜껑에 목화씨를 숨겨 갖고 들어와 한민족 의생활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던 문익점(1329~1398)을 연상케 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 들여온 묘목은 옥천 육묘장에 맡겨 비밀리에 길러졌다. 2010년 3월 심은 묘목은 12월 4일 농가에 보급됐다. 왕대추 5천주, 체리 270주가 첫 선을 보이고 농가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 애기사과는 내년에 분양할 계획이다.
"2년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여기까지 다시 오라고 하면 아마 도망갈 것 같습니다. 그만큼 고달프고 힘든 시기였어요. 이젠 열심히 공부해 제대로 재배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토양 성분과 기후 등 묘목을 당도 높게 키우려면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아요. 서익산농협의 미래를 위해 승부수를 던진 만큼 우리 조합원들이 꼭 이루고 말 것입니다. 전 우리 조합원을 믿습니다."
김 조합장이 대체작목에 거는 기대를 가름할 수 있는 대목이다. 2년 동안 준비해 온 결과물이 3~4년 후 어떤 모습으로 1천900여 조합원에게 다가설지 김 조합장의 승부수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 같은 김 조합장의 확고한 의지에 익산시도 곧바로 화답했다. 왕대추와 체리‧애기사과를 신소득작목시범사업으로 선정해 9천만 원을 지원하고 나섰다. 김 조합장은 우선 7농가에 7개동의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재배할 요량이다.
김 조합장은 차츰 재배 농가를 늘려 함라‧웅포 지역을 전국 최대 왕대추와 체리‧애기사과 단지로 키울 각오다. 다행히 조합원들의 호응도 좋다. 김 조합장의 열정과 성실함을 믿고 묘목을 달라는 조합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김 조합장은 내년엔 현장에서 살 생각이다. 또 조합원들과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 반드시 미국산 보다 당도 면에서 월등히 높은 영양 만점 과일을 소비자들에게 선물할 당찬 포부다.
아울러 익산시에서 1억 원을 지원 받아 설치한 복합영농시설하우스 28동에선 채소와 블루베리 등을 가꿀 방침이다. 이와 함께 김 조합장은 내년에 벼 공동 육묘장에서 생산한 양질의 종묘를 제공할 꿈에 부풀어 있다. 조합원들의 노동력 절감과 경영비 절감을 꾀하게 될 공동 육묘장은 김 조합장이 오랫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때문에 농가에 가장 저렴하게 제공할 요량이다.
"우리 시골 농협은 경제사업 활성화 밖에 없어요. 일단 조합원들이 고소득을 올려 삶의 질 향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으뜸이죠. 서익산농협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이기도 하고요."
김 조합장은 농산물 완전 개방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농가에서 생산한 소량품목도 일괄 수매해 농가소득에 기여할 계획이다. 고추와 콩‧잡곡 등 소량품목을 사들여 중간 상인들의 견제 역할을 하고 조합원들의 생활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픈 생각에서다.
항상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비는 김 조합장은 농민 운동가 출신이다. 웅포면 송천리에서 태어난 김 조합장은 예산농업전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고향에 정착했다.
당시 웅포초등학교에서 교육자로 은퇴한 아버지 김용술 씨(작고)가 농사를 물려 줄 후계자로 김 조합장을 지목한 것. 7남매 중 유일하게 이공계를 나온 김 조합장은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잘나가던 직장을 때려 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은 지 벌써 23년이 지났다. 아무런 불평 없이 고향 행을 따라준 부인 이옥엽 씨(50)와 함께 수도작과 블루베리‧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 50두 가량의 한우도 기르고 있다.
이처럼 '유령'같이 농사만 짓던 김 조합장을 일으켜 세운 건 93년 우루과이 라운드. 한‧칠레 FTA 등이 체결되면서 농민의 고통과 아픔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 없었다. 곧바로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웅포면 농민 부대변인과 한국농업경영인 후계자로 활발히 농민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다 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욕심에 후계자 선정회에 나가 "내가 한 번 회장을 하고 싶다"라고 선언, 그 길로 적극적 한국농업경영인 후계자 회장을 맡게 된다. 이후 한국농업경영인 익산시 부회장을 역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뭔가 허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농민을 보다 근접해서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농협. 김 조합장은 2008년 출사표를 던져 당선의 영예를 안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아버지 김용술 씨와 어머니 전택상 씨(85) 사이에서 6남 1녀 중 다섯째로 자란 김 조합장은 어려서부터 '정직'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살아왔다. 청렴한 공직자에게 주어지는 국민훈장동백장을 훈장을 받은 아버지의 영향 덕분에 이 교훈은 무너지지 않고 지켜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 셋 역시 정직하고 바르게 성장했다. 둘째 아들인 '선배'는 한국농업수산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농사일을 돕고 있다.
"2008년 취임 한 후 4년째 오로지 조합원들이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요. 그 결과물이 미국에서 가져온 대체작목입니다. 반드시 성공해 우리나라 최대 생산단지로 자리매김 시키고 싶습니다." /우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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