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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씨가 불에탄 한정식당 '취가'를 가리키고 있다.
지난 9월 8일 익산시청 브리핑 룸에서 예고에 없던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우리의 뇌리 속에 깊게 자리 잡았던 ' 전 시의원' 박재희 씨였다.
굵은 안경테 너머로 회견문을 읽어 내려가는 박 씨의 손끝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목소리는 다소 격앙된 듯 제대로 말꼬리를 잇지 못했다. 마침내 중간쯤 부분에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가 울먹이며 토해낸 말은 '무죄'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지 꼬박 2년 6개월 만에 결백이 증명된 것. 그동안 그는 보험금 노리고 자신의 식당에 불을 지른 방화범으로 몰려 숱한 고통을 겪었다. '284일간 옥살이, 지루한 재판, 잦은 병치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 시의원을 2번이나 지낼 정도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 그이지만 한 순간에 쏟아지는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따가운 시선은 말로 표현을 못할 지경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깨를 펴고 세상에 나온 박재희 씨를 화창한 가을 날 오후 불에 타 흔적조차 없어진 자신의 한정식 식당 '취가' 마당에서 만났다.
-무죄를 선고 받았다. 먼저 소감부터.
2년 6개월은 제 인생에 있어 참으로 기나긴 시간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져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까지 했다. 그동안 정신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 284일간의 옥살이로 인해 육체는 만신창이가 됐다.
하지만 하나님만이 아는 결백을 증명하러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대법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며 마침내 무죄를 받았다.
먼저 지면을 통해 그동안 믿고 기다려준 가족에게 먼저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항상 곁에서 성원해 준 익산시민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언제 어떻게 무죄가 확정된 것인가.
보험금을 노린 방화범으로 몰려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고 감옥생활을 했다. 그러다 2010년 9월 10일 항소심에서 건물에 방화했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석감됐다. 그 후 2011년 9월 8일 대법원 검사상고기각 판결로 무죄를 확정 받았다.
지난 9월 12일 마침내 지루한 법정 싸움이 종결지어진 셈이다. 실로 2년 6개월 만이다. 지난 2009년 2월 4일 식당에 원인 모를 불이 난 후 정말 기나긴 세월이었다.
-보험금을 아주 많이 탈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수십억 원 정도 될 것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실제 청구액은 9억 4천만 원 정도 밖에 안 된다. 손실액이 12억 원 정도 되니 적은 금액인 셈이다. 그리고 건물과 집기 등 감가상각비 3억 원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이 금액으로는 건물조차 지을 수 없을 것 같다. 건평이 300여 평 되는데 새로 지으려면 적어도 10억 원은 들어갈 것 같다.
-구속 당시 상황은.
2009년 2월 4일 집사람이 운영하던 한정식당 ‘취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런데 뚜렷한 증거 없이 방화범으로 몰았다. 화재를 수습하는 과정에 보험회사 측에서 여성용가발과 불쏘시개를 식당과 약 200여m 떨어진 국민생활관 잔디밭에서 주어와 증거물로 제시하며 보험금을 노린 보험 사기범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
가발을 쓰고 불을 질렀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가발에 묻은 유전자 검사 등 숱한 조사를 벌인 끝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284일간 감옥살이까지 했는데.
누명을 쓰고 불이난 해 2009년 12월 1일 구속돼 284일간 감옥생활을 했다. 2010년 9월 8일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났을 땐 이미 정신과 몸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허리와 목 등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석방 후 1년간 날마다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그래도 요즘을 좀 편하다.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도 오고 그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도 만나고…. 꼭 재기해 모두에게 보답하고 싶다. 잠시 못했던 봉사활동에도 집사람과 함께 다닐 것이다.
구속기간 중에 받은 재산상의 손실과 얻을 수 있었던 이익 상실, 그리고 정신적 고통과 육체 손상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지….
84세 노모와 처, 두 자녀를 두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마음이 무거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정의와 진실이 살아 있음을 보여줘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시의원을 두 번이나 지냈다.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제2, 제3의 박재희가 다시는 이 땅에 나와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 조금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적극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동안 익산에 정착해 나름대로 여러 사업을 하며 크리스천으로서 남을 위해 봉사하고 지역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 왔다고 자부하지만 앞으로 더욱 더 노력할 각오다.
거듭 밝히지만 저와 우리 가족 모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가족 모두 힘을 합쳐 생업에 종사함은 물론 그간 하지 못했던 익산발전을 위해 한 톨의 밀알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 /우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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