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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국새 인뉴를 제작한 한상대 씨가 서울 문래동 공방에서 인뉴 가공을 하고 있다.
익산에서 '국새장인'이 탄생했다.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금속공예과를 졸업한 전통금속공예가 한상대 씨(52). 20년 넘게 전통금속공예가로 활동 중인 한 씨는 자신의 작품이 다섯 번째 국새의 인뉴(국새의 손잡이)로 최종 선정돼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한상대 씨는 MBC 전통사극 주몽, 선덕여왕, 이산, 동이 등에 쓰인 왕관과 비녀, 검 등 다양한 장신구를 제작했다. 궁중유물인 고궁박물관 소장 삼인검을 재현하기도 했으며 20여 차례의 공모전 수상과 기능경기대회 심사장 및 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전통금속공예가.
하지만 한상대 씨가 국새장인에 선정되자 "무관(無冠)의 제왕이 떴다"며 의아해 했다. 숱한 명장과 대학교수급 전문가들 숲을 헤치고 당당히 국새장인이 됐기 때문.
한상대 씨가 디자인한 국새
그는 첫 테이프를 끊은 기록이 많다.
금속조각가로서는 정규대학에서 금속조각을 이수한 첫 세대이고, 대졸자가 남대문 시장에서 보석세공의 공인으로부터 혹독한 수련을 거친 첫 인물이다.
기능과 이론을 겸비한 첫 세대에게 현실에서 받았던 냉혹한 차별은 극복해야 할 첫 도전이었다. 장인들이 지배하는 기능세계에서는 대졸자를 인정하지 않고, 이론의 대학가에서는 기능에 대한 냉대가 정당화되는 시대의 산물을 깬 첫 세대이다.
#선덕여왕 등 사극 장신구 재현
지난 2월25일 발표된 행정안전부의 다섯 번째 국새 모형 당선작에게 심사위원들이 남긴 심사평은 전통과 창조력의 조화에서 진정한 장인의 실체를 찾아내고 있었다.
심사평의 결론은 이를 더욱 확고히 한다. ‘조각기술이 섬세하며 안정적인 자세의 봉황과 적절히 조화된 생략과 강조의 부분이 잘 표현됨.’ ‘제작자 나름대로의 변화와 강조를 적절히 조화시킨 조형성도 잘 표현되었음. 특히 쌍봉(雙鳳)의 자세, 날개와 꼬리 부분을 역동감 있게 조각해 힘 있고 단정하면서 웅건한 봉황의 느낌을 충실히 표현함.’이라고 호평이 이어졌다.
6척 장신에 90kg의 거구, 두툼한 손을 지닌 한 씨의 손끝에서 어떻게 작고 섬세한 조각기능이 나올까? 해답은 그의 굵은 장인정신에서 묻어난다.
그의 서울 문래동 공방은 수백 종의 전통 공구와 현대 공구의 전시장이다. 손때 묻은 각종 공구들이 금속을 깎고 두들겨져서 잘 다듬어진 연륜을 간직한 채 구석구석을 가득 매웠다.
“선 하나에 3∼4시간씩 매달려 조각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생각한 선을 디자인으로 그려서 이를 작업하면 다시 선이 마음에 따라 이어지고 움직여집니다.”
국새 당선 인뉴는 봉황이 벼슬 깃털부터 꼬리 날개까지 한 선으로 이어지며 돌아간다. 더 이어져 날개와 몸체 전체를 돌아가는 선의 조화가 작은 금속공예에서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이어지는 정교함이 가득하다. 그런 쌍봉 위는 무궁화 꽃이 만개한 상태로 하늘을 받친다. 만개한 꽃의 형상이 심사평 그대로 ‘활짝 폈다.’
디자인과 장인의 손길이 밴 조각선의 조화. 이는 국새모형심사위원단이 “상징의 표현을 넘어 국운의 기상을 잘 상징화”했다고 호평한 배경이다.
그는 0.05mm까지 실측하고, 고궁박물관의 삼인검 재현에서는 굵고 큰 검의 손잡이 제작에서 무쇠의 내부를 전부 손으로 파내는 수작업을 일관하듯이 1인 완성작을 고수한다. 이제는 '주몽', '선덕여왕' 같은 사극의 왕관 비녀 검 등 장신구가 그의 손에 의존한다.
“대학 1년 때 교수님이 새끼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금속에 불상 조각을 지시했고, 바늘에 실을 감아 손가락에서 돌아가지 않게 한 다음 불상을 조각해냈습니다.”
미술대에 첫 금속조각학과로 시작한 금속조각은 23년간을 작업과 디자인 몰입의 인연을 낳았다.
한상대 씨가 만든 삼인검
#금속조각 전공 뒤 보석세공 수련
그의 공방 원칙은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홀로 일관하는 자세다. 이를 위해 나이가 어린 공인들과 섞여 금속세공 보석세공 등의 거친 작업현장을 누볐다.
“참 놀림을 많이 당했습니다. 나이 어린 직장 동료들이 대졸자가 연습공으로 들어왔다고 엄청 괴롭혔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떨쳐내려는 행위가 미우면서도 기특해보였습니다.”
괴롭힘은 왕따 수준이었다. 난관의 극복은 한 길 밖에 없었다. 말을 하지 않고 연마와 세공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집중해서 몇 시간이 꼼짝 않고 일하는 습관이 그렇게 몸에 뱄다. 그 덕에 입체의 조각품을 눈으로 이미지의 감을 잡는 속도가 빨라졌다.
“입체미는 손으로 그려지는 평면도 위의 선 감각과 다릅니다. 여러 면에서 돌려 보고 만져보고, 더 중요하게는 이를 가대로 재현하는 금속공예 실습을 해봐야 전체 이미지를 균형 있게 살리는 선 감각이 살아납니다.” 그렇게 이론과 실습의 결합이 이미지의 완성으로 연결됐다.
그의 국새 당선은 이론과 실제 제작의 결합체이다. 그간 현장 제작에 강한 장인들이 이론을 외면한 추세와 이론에 강한 대학교수들이 제작 현장을 소홀히 했던 빈틈을 파고 든 것이다. 그로서 ‘국운상승’이란 미래의 가치를 이미지화하는데 기본적인 조화와 균형감의 완성도로 승부를 봤다.
#예술과 상업성 접목시킨 '장인'
그는 궁중유물 재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지만, 특별한 상복은 없었다.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을 20여 차례. 기능경기대회 심사장과 심사위원 등으로 평범한 장인의 길을 걸었다. 미국 아탈란타 올림픽기념 이봉주 마라톤화와 월드컵트로피 금형제작을 통해 잠깐 유명세를 탔을 뿐이다.
“보면 볼수록 좋은 것이 진정한 디자인입니다. 처음에는 좋아보이다가 금방 질리는 것은 디자인으로서 상품화가 어렵습니다.”
그것을 터득하는 과정이 그간의 공방 생활이었다. 그는 장인들이 60년대에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치며 고생하던 과정을 90년대에 거쳐야 했다. 공방수습으로는 늙은 나이이기도 했지만 이론을 갖춘 공인의 수련과정에서 감각과 판단이 한결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이제 “눈 감고하는 조각을 완성하는 실력을 갖췄다”고 자평할 정도이다. 그만큼 조각에서 손과 이미지의 감각이 일체화됐다. 과정은 혹독했다. 남대문 보석세공 공방에서 콩알만 한 산호비취를 10년간 깎았다. 앞면 뒷면은 물론 어느 면을 둘러봐도 아름다운 입체의 디자인 감각이 그렇게 완성됐고 전체 선의 조화가 관건인 금속조각의 장벽을 뚫었다.
“주물 공정에서 미세한 디자인 선을 살리는 것이 관건입니다. 디자인이 생명력이 없으면 작업 후에 이상한 선이 나옵니다.”
선의 완성이 국새 인뉴 당선으로 연결됐다. 예리하면 날카로운 선, 그렇지만 묵직하고 날렵한 이미지의 인뉴의 쌍봉황선은 실용과 예술의 확실한 접목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미지는 직접 터득에서 옵니다.” 늘 작업시간과 씨름하지만, 선에 대한 집중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통과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였다.
선의 승리. 위대한 5대 국새 명장 '한상대의 승리'였다. /황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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