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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김용상 강사
"이게 뭐야?" "디지털요." "뭐, 돼지털?" ○○전자 광고 문안의 한 구절이다. 소비자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동시에 자사의 디지털 제품을 대해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데에도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아날로그 세대한테는 디지털이라고 해 봤자 돼지털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21세기의 가장 큰 특징은 매체의 다양화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인간이 소통하는 도구, 수단은 오직 문자로 이루어졌다. 이후 컴퓨터가 세상에 나오게 되고 인터넷, 동영상, IT, 홀로그램, QR코드 등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주머니 속에 있는 스마트폰에서 해결되고 있다. 즉, 인간이 사용하는 감각이 다양해졌다는 의미도 된다. 공연문화도 마찬가지이다. 70년 초 공연되었던 ‘관객모독’이라는 관객들에게 욕을 하거나 물을 뿌리는 퍼포먼스로 결국 관객들과 배우가 싸우는 바람에 공연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점점 과격해지고 더 강한 것으로 관객을 모독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욕하거나 물 뿌리는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은 그저 관람만 하는 예전의 공연문화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하나의 의사소통으로 사용해왔던 무용의 형태에 언어, 음악, 연극 등이 결합하면서 뮤지컬, 오페라 등의 장르로 나타났듯이 이제는 공연문화도 관람의 범주에서 벗어난 게임, 놀이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문화사학자 J.하위징아(1872∼1945)가 제창한 호모루덴스(homo ludens)는 인간은 유희하는 존재, 노는 존재, 놀이하는 존재이다. 어떻게 보면 지적인 인간의 모습보다는 인간의 본성은 노는데 있다고 본다. ‘돼지털, 디지털’ 하는 부분도 ‘놀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 디지털은 디지털이고 돼지털은 언어의 장난이다. 고대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은 스포츠나 검투사의 시험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점점 검투사 대 검투사의 결투장으로 변했고 “죽여라! 살려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스포츠나 게임 등을 통해 이기도 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우와, 야~” 환호하며 놀고 있는 것도 그런 개념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지인에게 “익산의 볼거리·먹을거리·놀거리 소개 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여러 곳을 떠올리며 답을 해 주지만 실질적으로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 만큼 즐길만한 곳이 없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꼭 그렇지마는 않다. 아날로그적 소소한 재미는 어느 곳이든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디지털처럼 다양하고 화려한 것을 찾는 데에 있다. ‘즐기기’보다는 ‘놀다’는 의미에서 문화를 본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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