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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대역사를 쓰다
한국농어촌공사 익산지사 김병호 지사장(58)은 한반도 지도를 바꾼 새만금을 바라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장장 19년 대역사 속에 탄생한 세계 최장의 33km 방조제엔 김 지사장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아니 건국 이래 최대 국책 사업인 새만금에 열정의 젊음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농어촌공사 전신인 농업진흥공사에 1980년 입사한 김 지사장은 새만금 개발 현장에 투입될 당시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뛰어들었다. 역대 세계 최대 공사이자 워낙 위험한 현장이라 아무도 가길 꺼려했다. 하지만 김 지사장은 '고향땅 전북의 일'이라 자원했다. 망망대해 한 복판에 뛰어든 김 지사장은 하루하루 거센 파도와 사투를 벌이며 대역사의 기초조사를 다졌다.
새만금 기초조사 초기엔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다. 기초조사를 마치고 현장 사무실로 돌아가는 칠흑 같은 밤에 배 밑 부분이 김 양식장 말뚝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침몰직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했으며 집채만 한 거친 파도에 배가 전복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사고도 여러 번 겪었다.
"고향인 전북을 위한다는 생각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막상 와서 기초조사를 하다 보니 괜히 왔다는 후회가 막급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최대 국책사업의 최전방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더 컸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보람이 엄청 큽니다. 조사 측량 때 배로 2시간 가던 곳이 이젠 육지가 돼 자동차로 건너니 이루 말할 수 없죠."
김 지사장은 굵직굵직한 국책사업에 항상 최선봉에 서 있었다. 새만금사업 기초조사를 책임졌고, 금강 하구둑, 대아리 저수지, 서해안 간척사업, 경기도 시화호, 영산강 사업 등 대단위 국책사업에 참여했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 국책사업의 '야전사령관'인 셈이다.
스스로 쉬지 않고 줄곧 힘쓴 '실력파'
주변 사람들은 흔히들 김 지사장을 문무(文武)를 겸비한 장수로 표현한다. 176cm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추진력은 마치 삼국지 관우와 장비를 연상케 한다. 수줍은 미소에 조용조용 한 성품은 영락없는 유비다.
여기까지가 '무'라면 '문'은 제갈공명이다. 빼어난 실력과 끊임없는 노력은 오늘의 김 지사장을 있게 한 자양분이다. 동기들에 비해 직장에서 고속 승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3급 진급 시험 땐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1급 승진 역시 거뜬히 통과했다.
90년도엔 지질 및 지반 기술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전국에서 한두 명밖에 되지 않는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시험에 합격의 감격을 누린 것. 전북대 공대 익산캠퍼스를 72학번인 김 지사장은 대학 졸업 후에도 전공분야 책을 가까이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좌우명인 자강불식(自强不息·스스로 쉬지 않고 줄곧 힘쓴다)을 묵묵히 실천해온 노력파다.
"대규모 국책사업에 참여하다보니 잘못되면 벌 받을까봐(웃음) 항상 전공 분야 책을 끼고 살았습니다. 또 후배와 자식들한테 떳떳한 동료이자 아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 같습니다."
남다른 고향사랑 '직장생활의 원동력'
전북 익산시 함열 와리 함열중 사택에서 태어난 김 지사장의 고향사랑이 남다르다. 30년 넘은 직장생활도 고향 땅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내려왔다. 주로 본사와 전남 지역에 근무한 김 지사장이지만 승진 후 무진장지사장, 익산지사장을 내리 역임한 이유도 고향에 조금이나마 봉사하기 위함이다.
농어촌에 활력을 주고 농업인에게 소득을 안겨주는 농지은행의 농지연금사업을 비롯해 과원규모화사업, 농지매입비축사업, 농지매매사업, 농지임대차사업, 경영회생지원농지매입사업, 농지임대수탁사업, 경영이양직접지불사업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모두가 고향 익산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업인지라 조급함이 앞선다. 행여 홍보가 덜 돼 모르고 지나가는 농업인이 있지나 않을 까, 혹 억울한 사람은 발생되지 않을까 등 항상 노심초사다.
전국 93개 지사 중 3위 규모인 익산지사를 이끌고 있는 김 지사장은 관련 농업인만 4만1천여 명에 달한다. 이들을 위해 8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무려 414억 원을 들여 14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농업생산기반정비사업, 배수개선사업, 수리시설 개보수사업 및 유지관리사업, 지역개발사업 등 크고 작은 사업들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올 영농도 차질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수율이 94%로 양호하고 배수개선사업 등 영농준비도 잘 마무리돼 안심입니다. 큰 재해만 없으면 풍년농사는 무난할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굵직한 국책사업의 한 중심에 서 있었던 김 지사장. 오는 12월 정든 직장을 떠나지만 여한이 없다. 항상 머물던 자리에서, 또 주어진 일에 대해 이렇다 할 대과없이 일을 마쳤기에 뿌듯함은 더한다.
김 지사장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본분을 지키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차고 넘치기 보다는 조금은 모자라고 부족하더라도 만족할 줄 하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 삶의 가치를 풍성하게 하고 생활을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고 믿고 있습니다."라며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권찬 기자
김병호 지사장은?
유복한 교육자 집안 출신의 '지질전문가'
31년간 굵직한 국책사업에 바친 외길 인생
함열읍 와리 함열중 사택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 김성원 씨(85)가 함열중 교사(1~3회 졸업생 배출)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익산과 인연을 갖게 됐다. 원래 아버지 고향은 부안이다. 태어난 집은 도로 확장공사로 사라져 현재 찾아 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고교시절엔 아버지 직장(성심여중고, 해성중고)을 따라 전주로 나가 해성고(7회)를 졸업했다. 대학은 전북대공대 익산캠퍼스를 다녔다. 이 때 '지질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쌓았다.
80년 농업진흥공사에 입사한 김 지사장은 90년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기술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비로소 자신의 분야인 '지질 및 지반' 의 대한민국 최고 실력가로 인정을 받은 것.
부인 김선태 씨 사이에 여진(한림대 산부인과 의사), 여송, 현성(대학생)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천주교 이병호 주교가 부인 김선태 씨의 고모 아들이다. 주량은 소주 1병 정도. 가끔 숙소에서 동료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푼다.
김 지사장은 부안지사 유지관리팀장을 거쳐 전남본부 환경지질부장, 환경지질사업처 특수사업팀장, 무진장지사장 등을 역임했다. /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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