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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유일 이산상봉자 권의창씨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10년 11월 15일(월)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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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익산신문 | | 도내서 유일하게 18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다녀온 권의창 씨(81·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도천마을). 이달 3일부터 5일까지 2박3일간 일정으로 금강산호텔에서 셋째동생 의문 씨(65)를 만나 60년 동안 맺힌 한을 풀었다.
하지만 권 씨는 "만나기 전에는 밤새워 동생과 얘기하려 했는데, 입만 열면 북 찬양 얘기를 하는 통에 오만 정이 떨어졌다"면서 "이데올로기가 뭔데 60년 만의 만남을 이리도 무참히 짓밟느냐"고 고개를 내저었다. 권 씨는 이어 "이번 방문을 통해 모친 사망사실을 알게 돼 사망신고를 추진하고 있으나 그 마저 쉽지 않다"면서 "평생 한은 풀었지만 도리어 씁쓸했다"고 전했다. 지난 11일 권 씨를 만나 이산가족 상봉 소감을 들어봤다.
-먼저 소감한마디 해주시죠.
"만나기 전에는 기다렸지. 생사라도 확인하려고 을매나 설렜는지 몰라. 근디 막상 보고난 게 후회가 되더라고. 붉은 물이 쩔어서 입만 열면 북한찬양 얘기여. 느들(너희들) 그런 얘기하면 나 일어난다 협박도 많이 했어. 내가 살았나 죽었나 확인하러 갔지, 지들 얘기 들으러 갔나. 우리는 정 떨어지더라닌게.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같은 방 쓰던 공주노인네도 마지막 단체상봉에 나가기 싫다는 거여. 정떨어진다고. 알아듣지도 못할 얘기만 한댜. 아이고 이젠 돈 주면서 오라고 해도 안갈겨."
-셋째동생과 조카를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동생이 넷인디 셋이 죽고 하나 살았댜. 막내동생 의빈이가 올해로 예순둘인디 작년에 죽었다고 하고. 그 애 큰아들 광수가 나왔더고만. 그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뭔디 입만 열면 북한 찬양일색이여. 만나기 전에는 밤새워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평생 한은 풀었어도 정말 씁쓸하더라고."
-처음 만나셨을 때 느낌이라면요.
"글쎄…. 의문이가 해방둥인 게 다섯 살 때 헤어졌고, 60년 됐응게 잘 모르겠더라고. 테이블 번호가 4번이었어. 그쪽으로 가니께 남자 둘이 앉았더라고. 먼저 동생 편에서 의심증으로 얘기를 혀. 그래 다섯 살 먹었으니까 어느정도 기억나는 게 있을 것 아니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깨진 사발 얘기도 하고, 어머니 얘기도 하고. 그 애는 세밀하게 몰라도 나는 21살 먹어 나왔으니까 좀 알지. 이리저리 맞춰보니 동생이 확실하더라고."
-모친 소식도 궁금하셨을 것 같은데요.
"첨에 적십자에서 명단올 적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했기 때문에 궁금증은 적었지. 또 어머니는 100살이 넘게 되니까 살아계신다고 생각을 안했고. 동생들은 나보다 덜 먹었으니까 기대는 하고 있었지. 어머니는 일흔 한살에 돌아가셨다더고만. 동생들은 모두 죽고 의문이만 살았다고 혔어. 지금은 옹진에서 살지 않고 다른 데로 이사가서 산다고 하더라고."
-다녀오신 이후 모친 사망신고를 하시려 했다고요.
"우리 원적이 팔봉에 있어요. 부친은 고향에 온 뒤 바로 사망신고를 했고…. 이번 방문으로 모친 사망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사망신고를 하려 했더니 그것도 쉽지 않아. 면사무소 호적계장이 법원에 알아보니 대법원 판결이 있어야 한댜. 참내…. 어머닌 함라 진산리가 고향이고, 우리 집안이 익산에 와서 산 게 500년 이상이여."
-휴전선 넘으면서 옹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해보셨는지요.
"왜 안혀. 선친 묘소에 술이라도 한잔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 그래도 어떡혀. 휴전하면서 맥아더가 조금만 더 밀었으면 옹진은 이남으로 됐을틴디 그게 늘 아쉬웠어."
-속초로 가시는 길에 사고를 당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지금도 병원 다니며 치료하고 있어. 사위와 함께 올라가는디 경기도 안성쯤인가에서 정체가 심하더라고. 쿵 하는 소리가 나고 안전벨트를 맸는데도 휘청했지. 그 후 만지지도 못하게 아픈거여. 상봉이 코앞이니 입원할 형편도 안되고 혀서 의정부 가서 엑스레이 찍고 응급치료만 했지. 다음날 의료진에게 진통제 한방 맞고 상봉행사 참석한 뒤 여태 통원 치료중이여."
-통일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통일, 당연히 돼야지. 우리같은 사람들이야 늘 손꼽아 기다리는 일이여. 그런데 통일이 된다 해도 그 애들 근성이 하루이틀사이 없어질 것 같지 않아 걱정이여. 우리하고는 100% 다르니께. 암튼 높은 양반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제."
-처음 상봉소식 들었을 때 기분은요.
"이게 꿈인가 생신가하고 너무 기분이 좋았어. 사실 이산가족이 죄 합치면 8만인데 요런 식으로 만나면 50년 걸린다고 혀서 포기혔는디…. 느닷없이 적십자사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그래 이제 됐구나 싶더라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신다면요.
"북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양복도 똑같고, 신발도 똑 같습디다. 선물도 모두 통일하고…. 동생 의문이는 몸이 아팠다고 허는디 일절 물어보지 않았어요. 어느 정도라도 인간적인 얘기가 통해야지 원. 암튼 모두 건강해서 통일된 후에는 이념을 떠나 맘 놓고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
<취재를 마치며>
금마면 터미널 근처 중앙다방에서 만난 권 씨는 병색 탓인지 다소 피곤해 보였다. 상봉행사장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만난 사고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픈 것보다 도리어 60년 만에 만난 상봉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봉 소감에 대한 운을 떼자마자 그는 고개부터 내저었다. 붉은물(북한 찬양주의)이 형제애까지 갈라놓았다고. 말이 통해야 말을 할 것 아니냐면서 입만 열면 그쪽 얘기하는 통에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혀를 내둘렀다.
1928년 익산 팔봉동에서 3남2녀중 맏이로 태어난 권 씨. 그는 우체국직원이었던 부친을 따라 황해도로 이사간 뒤 웅진군으로 터전을 옮겼던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혼자 고향으로 내려와 오늘에 이르렀다가 이날에서야 형제를 만나 한을 풀었다.
제18차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에서 익산에 사는 권의창 씨(가운데)가 동생 의문 씨와 조카 광수 씨와 기념촬영을 했다. /글=김영애·사진=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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