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면부터 ‘싱글벙글’이다. 낙천적인 성격 덕분도 있지만 농촌생활이 즐거운 모양이다. 지난해 익산시 망성면에 둥지를 튼 새내기 귀농인 이환철 씨(49).

‘농촌사랑농원(☎063-862-3694)’이란 소박한 이름을 걸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농장을 둘러보며 상쾌한 하루를 보낸다.

논 1천 평의 벼는 황금들녘으로 변하고 있지만 태풍을 맞아 소출이 없을 판이다. 그래도 먹을 양식정도는 나올 거라며 껄껄 웃는다.

논 옆에는 하우스 9동을 장만했다. 3동에는 표고버섯을 재배 중이고 나머지 5동에는 고추를 심었다. 8월부터 첫 고추를 수확하고 있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우스 옆 자투리땅에는 파도 심었고 닭도 사와 기르고 있다. 3년 전에 심은 복숭아, 매실나무는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올해 5월 <익산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오는 귀농인도 있다며 환하게 웃는 이환철 씨. 그의 좌충우돌 귀농일기를 살짝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첫 수확의 기쁨 농사는 즐겁다!

이 씨의 농장규모는 작지만 이것저것 없는 게 없다. 번듯한 하우스 9개 동. 이중 1동은 사무실 겸 숙소로 쓰고 있다. 논 1천 평과 자그마한 과수원, 텃밭에는 온갖 작물이 자라고 있다. 하우스 입구엔 저온저장고도 들여놨다.

이 씨의 주력 농업은 표고버섯.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표고버섯 농사를 짓는 지인들의 추천으로 시작했다.

8개 하우스 중 3동에 표고버섯을 재배 중이다. 지난해 인근에서 참나무 5천 본을 사와 올해 3월 종균을 이식했다. 내년 가을 첫 수확한다. 매년 2동 씩 표고버섯을 늘려갈 계획이다.

나머지 5동은 고추를 심었다. 8월부터 고추 따기가 한창이다. 높은 온도의 하우스에서 일하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지만 직접 심고 기른 것이 열매를 맺어 신기하고 즐겁기만 하다. 첫 수확의 기쁨, 흐르는 땀방울도 달콤하다.

빨갛게 익은 고추는 한 눈에도 품질이 좋아 보인다. 새내기 농사꾼 손에 잘 자라준 것이 눈물겹다. 하지만 관리가 서툴러 남들보다 수확량이 적다. 그래도 재미있다며 싱글벙글이다. 잘 말려진 고추는 서울 가족들이 알음알이로 잘 팔아주고 있다.

#경제원 연구위원에서 농사꾼 변신

이 씨는 귀농 전엔 소위 잘 나가는 경제원 연구위원이었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에 있는 대한경제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당시 주택건설 분야 원가조사 및 분양가 산정 등의 전문가였다.

1988년 원광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인 1989년부터 1998년까지 프랑스에서 일하며 공부한 유학파였다.

대한경제연구원에서 이 씨의 유학경험을 높이 사 ‘파리정치대학원’ 강좌를 개설해 운영토록 했다.

당시 굵직한 정치·경제인들의 인기 강좌였다. 이 씨는 꼼꼼한 계획으로 커리큘럼을 짜 강사보다 인기가 높았다.

그러던 그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2008년.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 귀농을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주말엔 시골로 내려와 부모가 농사짓던 땅에 복숭아, 매실나무 등을 심었다.

틈틈이 국가 지정 대학에서 운영하는 귀농인 교육을 온라인으로 100시간 이상 받았다. 각종 작목부터 기계사용법, 농약사용법, 토양관리 등 농사 관련 지식을 습득했다. 경실련 주관 도시농부학교에서도 공부를 마쳤다.

2011년 3월 사표를 던졌다. 회사를 다니며 부업으로 했던 여행사도 같이 접었다.

3년 간 착실하게 준비한 그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귀농을 했다.

#귀농 반대하던 가족 든든한 응원군으로

이 씨는 홀로 귀농했다. 부인 임병운 씨(45)와 주말부부다. 귀농 전부터 부인과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자식들 교육문제가 컸다.

이 씨는 3년 전부터 부인과 함께 과실수를 심으며 귀농을 설득했다. 애초부터 나이를 먹으면 시골에서 살기로 작정한 이 씨의 고집을 알기에 부인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직업군인이 된 큰 아들 용현 씨(21)는 아버지의 귀농을 응원했다. 막내 용일 군(19)이 고교 3학년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면 부인도 귀농할 예정이다.

#자연재해 좌절 딛고 희망과 도전 배워

이 씨는 첫 농사부터 시련을 겪었다. 올 8월부터 닥친 세 번의 태풍에 벼 이삭은 영글기도 전에 백수피해를 봤고 심지어 땅 바닥에 누워버렸다.

숙소로 사용하는 하우스를 제외하곤 하우스 8동 비닐이 강풍에 전부 날아갔다. 다행히 철재는 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았다. 다시 350만 원을 주고 비닐을 새로 씌웠다. 고추도 1동이 손상을 입었다.

“자연재해는 처음이죠. 농사가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나의 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죠. 한 톨의 쌀이 생산되기까지 농부의 눈물과 한숨이 얼마나 뿌려졌는지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씨는 좌절보다는 희망과 도전을 배웠다. 볼라벤 피해를 본 후 철저히 대비해 덴빈, 산바를 무사히 넘겼다.

주력사업인 표고는 해를 입지 않았고 고추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피해가 큰 벼농사가 문제지만 먹을 양식정도는 건질 거라며 웃음 지었다.

#익산시농업기술센터 도움 커

이 씨는 어릴 때부터 농촌에 대한 향수가 짙었다. 농부의 6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것도 이유다. 지금 농사짓는 곳도 부모가 농사짓던 땅이다. 첫째, 셋째, 넷째 형이 10분 거리에서 농사짓고 있는 것도 귀농에 한몫했다.

드디어 첫 농사. 3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자신했지만 만만치가 않았다. 자금이 생각보다 많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정부융자로 1억7천만 원을 받고, 자비 1억여 원도 들여 하우스와 시설을 갖췄다.

이 씨는 “시설비보다 부수적인 비용이 많이 든다. 경제적인 자금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며 귀농 준비자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농사교육을 받은 것과 현장에서 차이가 심하다. 교육을 받으면서 직접 현장에서 일하며 농사짓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그래야 경험을 더 쌓을 수 있고 그만큼 위험은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귀농정착 지원 사업을 이용할 것도 권했다. 귀농교육, 귀농정착자금, 농가주택수리비지원 등 여러 가지 정책들을 잘 활용하라는 것이다.

이 씨는 익산시농업기술센터의 도움에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류문옥 소장과 박상춘 농촌지원담당의 도움이 없었다면 안정적 귀농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귀농인 체험장 조성 과학영농 꿈

이 씨는 처음 하우스를 지을 때 두려움보다 즐거움이 더 컸다. 귀농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 내년 가을에는 표고버섯으로 3천만 원 수익을 예상한다.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첫 소출이기에 그날이 기다려진다.

이 씨는 익산시귀농귀촌인연합회를 조직할 예정이다. 농사정보가 어두운 귀농인들을 위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도움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할 요량이다.

또 귀농인 체험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농업교육과 현장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 씨는 “한 농작물을 씨 뿌리고 수확하기까지는 약 3개월 정도가 걸린다. 이 과정을 배우는 체험장을 만들면 귀농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의 목표는 과학영농. 귀농교육을 받을 때부터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직접 농사짓고 농가들을 만나면서 현실과 이상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뜻대로 하자니 비용이 많이 들고 제반여건도 과학영농을 하기엔 현실적으로 너무 동떨어져 있죠. 점차 농사를 지으며 과학영농을 추구할 생각입니다.”

/글·사진= 우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