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한껏 물오른 4월 초. 원광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함께 한 전남 강진 문학기행에 익산신문 시민기자가 동행했다.  시대를 거슬러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인생에 대한 찬사가 봄 바람에 함께 불어오는 듯 한 여행길.다산초당과 김영랑 생가와 시비, 강진 청자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그들의 일정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주



어떤 때 맘 가누기 힘이 들던가
봄 대낮에 솜옷 빠는 소리 들을 때.
봄바람 비를 불어 호수 언덕 지나가니
푸른 샘 물 넘치고 성엔 구름 개었네.
급한 소리 더 많고 느린 소린 적으니
여린 맘 굽이굽이 정성 가득 품었구나.
낭군 옷이 서리처럼 희어지길 바랄 뿐
손발에 굳은살 박이고 얼어도 아무렇지 않아요.

-빨래 방망이 소리(정약용)-

ⓒ 익산신문

유배생활 18년 중 10여 년을 강진에서 보냈다는 정약용과 일제강점기 절필선언으로 일제에 항거한 시문학파 시인인 김영랑 그리고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 고려청자를 혼으로 빚어냈던 고려장인을 만나고 왔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모두 다르지만 우리가 만난 그들의 삶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오롯이 남아 그들의 열정과 삶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 익산신문

문학기행을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어올 것인가? 또는 무엇을 보고 깨달을 것인가? 라는 화두로부터 시작한다. ‘문학’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간 여행 자체가 다른 여행들에 비해 무언가를 체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조금은 잘못된 이런 생각들이 강진에서의 다산과 영랑을 만나며 새롭게 바뀌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니라 내면에 담아 놓을 수 있는 그 무엇들을 지금부터 잔잔히 보여주고자 한다.

먼저 다산유물전시관을 들어가니 다산이 남겨놓은 편지들과 수많은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저술한 책들과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보며,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라는 깊은 사유를 하게 되었다.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침잠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매일매일 편지를 보내고, 제자들을 길러낸 다산의 삶. 새로운 세상을 위해 도전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는 삶은 그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진데...

지금의 우리는 내 자신을 모두 내어놓고 이 시대를 얼마나 굳건히 살아내고 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깨달음을 준다.

ⓒ 익산신문

그는 이 길을 오르내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월을 뛰어넘어 다산이 오르던 그 길을 지금 내가 걷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오르내림의 발길에 짓밟힌 산길엔 발길 닿은 길 위로 앙상히 자신의 속 깊음을 드러낸 나무뿌리와 크고 작은 돌부리들이 이 길을 오르내리며 집에 두고 온 처자식 생각에 노심초사했을 그의 아픈 마음이 느껴진다.

나무뿌리를 밟지 않으려 한 발 한 발 까치발로 산등성을 올라가니 대나무 숲과 동백나무숲 사이로 고즈넉이 자리 잡은 다산초당이 보인다.

‘아름다운 풍광이 다산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오전 일정은 이렇게 다산을 만나고, 다산이 처음 유배 내려와서 묵었던 ‘사의재’에서 점심을 먹었다.

유배당시 유배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잠시이지만 주막의 주모 배려 덕분에 주막에 기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정약용이 즐겨먹었다는 아욱국과 매운 추어탕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그의 삶을 반추해본다.
 
오후 일정은 현대 시문학의 선구자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를 탐방하고 그의 시혼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네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 익산신문

함께한 원광 가족들도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시어들에 폭 빠져 시비를 찾아 헤매며  시를 읇조리는 모습에 모두가 시인이 되었다. 가장 마음에 든 시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등의 시라고 답한다.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김영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풀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
오날하로 하날을 우러르고십다
새악시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시의 가슴을 살프시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십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강닙이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시의 향기를 머금은 곳에서 영랑의 시들과 만나며, 그가 살았던 생가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감성이 충만함을 어찌 글로 모두 옮길 수 있으리.

그의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를 모두 보여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 이외의 것들은 사족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시들을 뒤로 하고 시문학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마지막 여행지인 청자박물관으로 가벼운 발길을 옮겨본다. 청자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물레를 돌리고 있는 고려시대의 장인이 우리를 먼저 반긴다.

ⓒ 익산신문

박물관 내부에 진열된 자기들 중에는 현재 시가로 10억이 넘는다는 참외모양의 도자기도 진열되어 있어 속세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물관 여기저기를 둘러본 후 드디어 도자기를 빚는 장인이 되어볼 수 있는 체험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 익산신문

평면이었던 흙덩이 하나가 입체적인 물건으로 탄생되는 시간을 위해 모두들 집중하며 손길에 정성을 가득 머금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 모두 고려시대 청자를 빚던 장인의 손길 못지않다.

창작의 시간을 끝으로 강진문학기행의 일정 모두 마무리!!

시대를 넘어 그들과 함께한 오늘의 우리 삶은 언제 어디서나 이어지고 그 속에 사는 우리는 오늘도 마음먹기에 따라 삶의 모습이 변화될 수 있음을 깨달으며 책의 숲에서 길을 찾는 문학기행을 통해 내 삶의 길을 찾은 듯하다.

/전정순 학부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