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0-08-06 오후 10:48:02 전체기사보기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결혼/돌
부고안내
시민여론광장
알림방
자유게시판
익산신문에 바란다
 
뉴스 > 열린광장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월요아침窓】나라사랑을 되새기자 - 한승진
마스터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19년 12월 06일(금) 19:26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익산신문
190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이주 노동자로 건너간 23세의 김종림은 가난한 농사꾼이었다. 흉년으로 생긴 빚을 갚지 못해 노예나 다름없는 미국 소작농이 되어 수확물의 90%를 땅 주인에게 주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의 주식 곡물인 밀이 아닌 쌀을 묵묵히 성실하게 재배하던 김종림은 조금씩 자신의 땅을 늘려가더니 어느새 400만평의 땅에서 2만석이 넘는 쌀을 거두어들여 사람들에게 캘리포니아 백미 대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피와 땀으로 이룬 재산을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김종림이 백미 대왕이라 불리며 벌어들인 돈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용되었다. 독립운동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사에 인쇄기를 사 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원에도 아낌이 없었다.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최초의 ‘윌로우스 한인 전투비행학교’가 설립되는데 학교 부지, 비행기 구매, 학교 운영비 등 거의 모든 자금을 지원해서 대한민국 공군의 큰 뿌리를 마련하도록 도왔던 것이다.

그 많은 재산을 조국을 위해 사용했음에도 자식들에게조차 자신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을 알리지 알았다.

자신이 가진 작고 하찮은 것도 남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아까울 수도 있고 자신이 이룬 조그만 업적도 널리 알리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가짐인데 놀라운 일이다.

조국을 위해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고 그 위대한 업적 앞에서도 겸손할 수 있는 김종림 선생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도산 안창호는 이런 말을 했다. “그대는 매일 5분씩이라도 나라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17세 여학생 시절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행상으로 모은 돈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전달했다. 19세 나이에 평양에서 3·1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6개월간 옥살이를 하며 갖은 고초를 꿋꿋하게 견뎠다.

평안남도 안주·진남포, 경성, 대구 등 전국 20여 곳에서 사회 개혁 운동을 추진하며 일제에 의해 ‘조선용의자 133’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1920년 8월 3일 오후 9시 30분에 벌어진 평양경찰서 폭파 작전에 참여하여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기도 했다.

1926년 7월, 중국 윈난 육군항공학교 1기 졸업생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되어, 이후 상하이 사변에서 일본군을 비행기 기총소사로 무찌르고 중국 정부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았다.

광복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 여성 전문위원을 거치며 한국 공군 창설의 큰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시기 국회 국방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1977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그리고 전 재산을 장학사업을 위해 기부하고 장충동 2가의 낡은 목조 건물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88년 4월 19일에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 출판인이었으며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그녀는 열아홉 살 적 3·1 운동 때부터 자신의 목숨을 이미 나라에 바쳤으며, 이후는 덤으로 사는 삶이라 여겼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평생을 국가에 헌신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국가의 미래 주역에게 남겨 청년들에게 꿈을 가지고 나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비행사로 많은 업적을 남긴 선생의 존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들 기억 속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점점 잊히고 있는 게 현실이다. 조금이나마 고마움에 보답하면 좋겠다. 나라를 지켜준 독립운동가들의 후손 중 가난과 질병으로 어렵게 사는 이들을 돕는 시민사회운동이 있었으면 좋겠다. 

2019년 올해는 피와 눈물 그리고 뜨거운 애국심으로 한반도를 뒤덮은 3.1 만세 운동이 일어난 100주년이다. 100년 전 목숨을 아끼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외침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꿈을 갖자. 꿈이 없으면 죽은 사람과 다를 게 없다. 꿈이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 못할 게 뭐가 있나.


 

마스터 기자  iksanpress@hanmail.net
- Copyrights ⓒ익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카카오톡
 
이전 페이지로
네티즌의견 0개가 있습니다.
 
!!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등 법률 및 신문사 약관에 위반되는 글을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에 대한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은 게시자에게 있으며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실시간 많이본 뉴스  
남성맨션 재건축사업 터덕…정비구..
익산세무서·세관 통합청사, 10월 ..
【사설】지방대 원광대 위기는 익산..
약촌오거리 진범잡은 형사“수사중 ..
여산휴게소 부근 빗길 교통사고…3..
낚시 간다던 익산 거주 50대 가장, ..
익산 서부권 학곤선 4차선으로 뻥 ..
익산에 전북 최초 미혼모 가족복지..
인구 29만명선 붕괴후 1년간 월 평..
‘익산 다이로움’, NH농협카드로도..
최신뉴스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뒤엔 '엉터..  
일반음식점 입식테이블 교체시 최..  
한국철도 전북본부, 제3기 고객평..  
전북허브산학연협력단,‘지리산 품..  
익산경찰서, 보이스피싱 예방 익산..  
코로나19 뚫고 8월 7~9일 익산문화..  
익산행복시민운동본부, 300만원 상..  
남중동 새마을부녀회, 소외계층에 ..  
김수흥 의원 특교세 11억 확보…익..  
익산여성소비자연합,사회적 농업교..  
"휴가철 익산 농촌체험휴양마을서 ..  
익산 남중동 밤길 "안전지킴이가 ..  
감성충만 ‘세계유산 익산 미륵사..  
교통요충지 KTX익산역에 스마트도..  
전북은행, 집중호우 피해기업에 금..  
인사말 연혁 편집규약 윤리실천요강 광고판매윤리강령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익산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3-81-34955/ 주소: 전북 익산시 인북로 190-1(남중동) / 발행인.편집인: 박종규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규
mail: iksanpress@hanmail.net / Tel: 063-841-1221 / Fax : 063-856-2625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북 다011187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