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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窓】권투 - 정성수
마스터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19년 03월 08일(금)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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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수 시인
ⓒ 익산신문 
권투가 사망 선고를 받은 지 오래다. 치고 패고 다운됐다가 일어나서 튀어나온 마우스피스를 다시 물고 탱크처럼 돌진하던 기백도 보이지 않는다. 비신사적이고 잔인한 구시대의 스포츠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권투는 화끈하지도, 세련되지도, 화려하지도 않아 현대인들에게 외면당했다.

1982년 11월 14일 김득구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미국의 레이맨시니에게 도전하여 14회에 KO패하고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실려 갔다. 그는 홀어머니와 임신 중인 약혼자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챔피언이 되어 가난을 벗어나 보려던 27세의 꿈도 같이 스러졌다. 이 사건 이후 ‘권투는 잔인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경기 중 선수가 사망하거나 다치는 사고가 연일 터져 나와 ‘권투 존폐론’이 계속 제기될 정도로 권투에 대한 편견이 자리를 잡았다. 이런 일들은 결국 권투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

다행하게도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아마추어복싱은 전 체급 석권이란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세우며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프로로 몰리면서 권투는 국민 스포츠라는 화려한 명성을 차지하였다.

주말 오후가 되면 남자들은 어김없이 텔레비전 앞에 모였다. 그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챔피언 벨트를 지키기 위해 혈전을 벌이는 권투 중계였다. 텔레비전 속에서 아나운서가 레프트 쨉 라이트 훅을 외치면 마치 자신이 권투선수라도 된 것 마냥 빈주먹을 휘두르며 우리 선수를 응원하기도 했다. 상대방 선수가 다운되면 주심과 함께 카운트를 하나 둘… 세며 일어나지 못하기를 빌었다. 주심이 ‘텐!’을 외치고 공이 울리면 환호성을 질렀고 텔레비전 앞은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권투 없는 주말을 보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 세계챔피언은 김기수다. 그는 1966년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2대1 판정승으로 이기고 프로복싱 챔피언이 됐다. 그는 아마추어 데뷔 후 프로 전적 까지 88전 87승 1패의 화려한 성적을 거두었다.

한국 복싱 최고의 스타는 4전 5기의 홍수환이다. 1974년 WBA 밴텀급 타이틀전 승리 후 전화로 어머니에게 외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와 1977년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전 당시 헥토르 카라스키야에게 2회에 4번의 다운이 되고도 3회 KO승을 거둔 4전 5기 신화는 요즘도 회자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가장 빛나는 전적을 남긴 장정구는 1988년 11월 WBC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을 자진 반납할 때까지 15차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끝냄으로써 동급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외에도 일본의 영웅을 적지에서 때려눕힌 유제두, 소매치기 출신으로 비운의 세계 챔피언이 되었던 김성준,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라이터돌이라는 애칭을 가진 김광선 등은 말 그대로 복싱 영웅들이다.

전성기를 누리던 우리나라 권투는 90년 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관중석의 빈자리는 늘어갔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복싱은 돈을 버는 지름길이었다. 뿐만 아니라 링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부와 명예를 한손에 거머쥐겠다는 ‘헝그리 복서’도 찾을 길이 없다.

요즘은 권투의 인기가 처참하게 낮아져 몰락한 상황이다. 60년대부터 불어온 복싱 붐은 수많은 세계챔피언들을 배출하여 우리나라를 복싱강국으로 만들었지만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지나 빈곤이 줄어들자 복싱은 타 종목에 밀리기 시작했고 위험하고 고단한 스포츠로 인식이 바뀌었다.

물론 요즘도 권투 선수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있다. 그러나 맨주먹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쥐꼬리만 한 대전료는 선수들이 생계를 꾸려나가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먹고 살만해 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힘든 일은 안하려고 하다 보니 권투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가 됐다.

일반인들의 편견과는 달리 권투는 신사적인 스포츠다. 단지 치고 받는 싸움이 아니라 엄격한 룰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이다. 목표를 가지고 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집중력을 요하는 스포츠다. 그렇기 때문에 권투는 어느 경기보다도 정신력을 요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권투는 목표가 없다고 한다. 세계적인 챔피언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강하지만 국가적 지원은커녕 마땅한 선수도 없다. 권투의 몰락은 선수들이 헝그리 정신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보다 심각한 것은 권투인들의 사고다.

지금이야 말로 구태에서 벗어나 계획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이 필요한 때다. 세계 챔피언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땀으로 뭉쳐진 챔피언이 진정한 세계 챔피언이다. 그렇다고 링 위로 흰 수건을 던질 필요는 없다. 정말 권투는 죽었는가? 아직도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마스터 기자  iksan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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